“1급 장애 딸의 환한 미소… 크리스천들의 사랑, 희망 일자리가 큰힘 됐죠”
입력 2014-01-15 19:55 수정 2014-01-16 02:32
이정민·백지희 모녀의 희망 만들기
백지희(23·여)씨의 어머니 이정민(48·수원원천침례교회)씨는 매일 오전 5시면 딸을 데리고 경기도 수원의 집을 나선다.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에 있는 극동방송 본사 지하 카페다. 사옥을 새로 지으면서 문을 연 이 카페가 백씨의 직장이다.
백씨는 ‘조스 테이블(Joe’s Table)’이라는 이 카페에서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한다. 방송사 조찬 등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실내 청소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딸이 바닥을 쓸면 어머니 이씨는 걸레로 닦는다. 딸이 애플파이와 호두파이를 만들면 어머니 이씨도 딸을 돕는다. 딸이 내린 커피는 어머니의 손을 거쳐 손님에게 전달된다. 급여를 받는 딸과 달리 어머니는 자원봉사자다.
이씨가 매일 새벽잠을 설치고 딸과 함께 50㎞ 거리의 방송사에 출근하는 이유는 딸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 때문이다. 백씨는 선천성 다운증후군을 앓는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다.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수줍음이 많고, 일도 느리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3년제 대학의 졸업반이지만 직업훈련 실습을 나가지 못할 정도로 사회활동이 어려웠다. 어머니는 애가 탔다. 어떻게든 딸의 홀로서기를 도와야 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지난해 10월, 이씨는 극동방송 사옥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장애인을 고용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지원했다. 11월 출근에 앞서 백씨는 모교인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 내 파이판매점에서 한 달 동안 인턴교육을 받았다. 커피를 내리고 파이를 만들고 주문과 테이블 정리가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느렸다. 15일 만난 어머니 이씨는 “지희가 사람과 만나고 대화하는 것도 싫어하고, 청소하는 것도 싫어하고 일도 느리다보니 혹시 폐가 될까봐 첫 출근부터 함께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할 곳을 하나 얻었을 뿐인데, 백씨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백씨는 이날 손님이 고맙다며 내민 손을 거절하지 않고 맞잡았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또렷이 대답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주로 어머니 뒤에 숨어 지냈지만, 이제는 스스럼 없이 손님과 대화를 나눈다.
이씨는 “그리스도인 간의 사귐이 이렇게 대단한 힘을 가졌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고 고집 센 아이였는데, 지금은 ‘지희야’라고 한 번만 불러도 바로 일어난다”며 “카페를 찾는 방송사 직원들과 손님들이 매일 딸의 안부를 물어주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면서 지희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어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작고 수줍은 목소리로 들려 준 백씨의 꿈은 ‘요리사’였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어머니 이씨의 꿈도 “지희와 함께, 지희가 만든 요리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됐다. 그리고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두 모녀는 자신들의 경험을 다른 장애인 교육기관에서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이곳에서 몸으로 익힌 노하우를 다른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나누고 싶다는 기도제목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편 조스 테이블 카페는 캐나다 교포 자폐청년이었던 죠셉 정씨가 2012년 수영 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부모인 피터 정(정문현) 장로와 스테파니 정(정성자) 권사가 아들을 기리고 장애인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지난해 밴쿠버에서 처음 문을 연 카페다. 카페는 장애인들이 일방적으로 도움받는 곳이 아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며 차별 없이 함께 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