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TV 토크쇼 출연 개조카 고민녀 보며 빅토리아시대 개 납치범을 떠올리다
입력 2014-01-15 17:26 수정 2014-01-15 22:54
1. 13일 밤 방영된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고민녀’ 얘기에 빅토리아시대 개납치범이 생각나 혼자 웃었습니다.
2. 이날 고민녀는 서른여섯의 여동생이 시집도 안가고 개·고양이 9마리를 키우며 가족에게 피해를 끼치며 산다고 호소했습니다. 동생의 반려동물 사랑이 지나치다는 거죠.
그 동생은 애완견 ‘삼순이’를 비롯해 9마리를 자식 키우듯 사랑을 쏟고 삽니다. 동생은 고민녀에게 전화를 걸어 “조카(애완견) 생일인데 소고기 미역국 좀 끓여 와라”고 요구한답니다.
3. 그 ‘애완동물 사랑녀’는 ‘자식’들 때문에 외출도 제대로 못합니다. 애완견 때문에 평생 엄마·언니 등과 가족 여행을 못해봤습니다. 홀로 사는 그분, 15평 집 안에 CCTV를 달아 자신이 외출했을 때도 지극 정성으로 보살핍니다. 사료비 등이 한 달 40만∼50만원이라고 합니다. 이 분, 어머니 가게 일 돕고 살뿐 특별한 직업이 없습니다. 다리 수술해서 직업 갖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9마리 반려동물을 받아주는 남자가 있으면 결혼하겠다고 합니다. 그녀의 ‘애완동물’ 사랑은 첫사랑에 실패한 것이 원인인 듯 합니다.
4. 방청석의 어머니는 눈물을 찍어냅니다. 이 같은 상황, 우리 주변 둘러보면 더러 있습니다. 답이 안나오죠.
5. 서울 강남의 한 애완견 유치원은 일반 유치원과 똑같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노란 통학버스도 운영됩니다. 한달 40∼50만원 원비를 내야 합니다. 애완견 부모학교를 열어 ‘원견’ 발표도 시키고요. ‘선생님’들이 ‘유치원에서의 하루’ 가정통신문을 보내니까요. 애완견이 유치원에서 하루를 잘 보냈다는 통신문을 받은 ‘엄마’는 좋아서 입이 벌어집니다.
6. 1890년대 영국에서는 애완동물 기르기가 열풍처럼 번졌습니다. 식탁에서 밥 먹이고, 화사한 옷을 입히는 등 가족 일원으로 대했습니다. 가출 또는 실종이 났을 경우 신문에 찾는 광고를 냈습니다. 또 죽으면 성당 구내에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애완견을 위한 쇼, 특허품, 잡지 등이 등장했고 끝내 전문적인 유괴범까지 나타났지요.
이같은 붐은 귀족층과 경쟁을 시작한 부르주아 계급의 사치의 일환이었죠. 잡종개를 키우면 교양 없는 사람 취급을 했던 시대입니다.
7. 그런데 이 열풍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연합군측이 1만5000마리의 개를 전장에 투입하면서 ‘개취급’ 된 거죠. 3분에 1이 전장에서 죽었습니다.
8. 오늘, 1인당 2만4000달러 소득 한국인에게 빅토리아시대 부르주아 문화가 정착되는 걸까요? 대성당에서 애견 장례를 치룬 바이런 경이 묘비에 ‘인간의 사악함은 몽땅 배제한 채 미덕만 갖춘 우리의 친구, 여기 잠들다’라고 했던 ‘미덕 갖춘 견공’들이 1인 가구의 삶을 위로합니다. 인간은 사악하고, 동물은 배신하지 않음이 숭배되고 있는 거죠.
9. 저희 집 애완견 ‘콩’도 넘치는 사랑을 받습니다. 저도 콩 만큼 사랑받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개 병원비가 내 1년 치 병원비보다 많습니다. 제가 콩을 유괴할까요? 사랑받기 위해서?
오늘 한국의 수많은 귀족 애완견이 미용을 마치고 푹신한 방석에 앉아 아프리카 기아어린이 구호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진풍경입니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