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 새로운 100년의 약속] (2) 청소년 복지정책의 산파 ‘청소년성문화센터’

입력 2014-01-16 02:31


제도권 밖 청소년들 아픈 삶 보듬으며 30년

꼭 30년 전인 1984년 2월, YMCA는 2·8독립선언 행사를 기념하며 ‘아주 특별한’ 프로젝트를 내놨다. ‘YMCA 청소년성교육상담실’. 당시만 해도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서슬 퍼런 군사정권이 집권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뜬금없이 ‘성(性)’ 문제를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 사업의 전신은 7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왔던 ‘근로청소년을 위한 정신건강 상담실(청소년상담실)’이다. 이곳은 산업화의 물결로 영등포 공단지역 곳곳에 주경야독하던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일하면서도 배움의 꿈을 놓지 않고 야간학교를 다니던 10대 청소년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 나온 고민의 산물이었다. 학생YMCA가 학교를 다니는 제도권 청소년들을 조직·훈련하며 지도력을 만들어냈다면 청소년상담실은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YMCA는 당시 한창 한국사회에 도입되던 ‘상담(counseling)’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 땅의 젊은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과 동행하고자 하였다. 막상 청소년상담실을 통해 접한 그들의 삶은 어디서부터 도와야 할지 막막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제도권 밖의 청소년들은 임금체불, 노동착취 등 노동환경의 구조적인 문제들과 더불어 작업반장에 의한 폭력 무엇보다도 성폭력, 성차별, 남녀위계 문제, 임신과 그로 인한 낙태…. 특히 성문제가 심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물밀 듯 밀려드는 상업적인 서구문명과 함께 군사정권의 우민화 정책, 이른바 ‘3S’ 정책으로 성 문제는 피할 수 없는 YMCA의 과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렇게 태동된 YMCA 청소년성교육상담실은 매년 산업체 지도자와 교회 사역자들을 위한 성교육 전문 강습회를 열었다.

산업체와 학교, 교회에 이르기까지 성교육에 대한 계몽활동을 확대했고, 매년 2월에는 학부모들과 함께 성교육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 활동은 YMCA의 ‘향락문화 추방운동’과 함께 전개된 ‘청소년 유해환경 추방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청소년 성상담 전화를 통해 나타난 사례는 우리 사회 청소년들이 맞닥뜨린 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한 10대 소녀는 눈만 뜨면 이유 없이 때리는 아버지의 폭력에 참다못해 무작정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사연을 들어보니 아주 오랫동안 성폭력을 당해 왔다. 그 소녀는 감히 성폭력이라고 말을 하지 못한 것이다. 성폭력이라는 단어조차 몰랐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이뿐 아니다. 집에만 있으면 숨이 막혀서 무작정 나왔다며 짐을 싸들고 온 이들, 야단을 치는 부모가 무서워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아이들, 부탄가스를 들이마시다 다쳐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상담실을 찾는 10대들과 학교폭력으로 자식을 잃고 망연자실해 하소연하러 상담실을 찾아오는 학부모들까지….

‘청소년성교육상담실’은 성 문제는 물론 마땅히 하소연할 곳이 없었던 청소년들의 삶 전체를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 같았다. 상담실에 접수된 청소년들의 무너진 삶은 가정과 학교의 책임을 넘어 사회적 책무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었다. YMCA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활동 반경을 좀더 넓혔다. 국내 최초의 ‘가출청소년쉼터’를 비롯해 ‘진로진학상담실’ ‘약물남용 상담실’ ‘인터넷중독 상담실’ 등을 차례로 열었다.

청소년들의 삶에 귀 기울이며, 그들과 함께 동행해 온 YMCA의 노력은 국가기관의 공공 정책으로 받아들여졌다. 청소년상담활동과 가출청소년쉼터는 ‘청소년복지 지원법’으로, 청소년성교육상담실은 ‘청소년성문화센터’ 등으로 구체화됐다.

2014년 현재 YMCA의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는 한국YMCA 설립 10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시대적 요구에 귀 기울이고 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성이란 무엇인가. 다양성과 차이를 수용하는 문화적 수준과 성 평등 지수는 어느 수준일까. 고귀한 성이 돈과 권력, 폭력으로 도구화되는 현실 속에서 사(私)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진보한 것일까….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성폭력·성매매특별법, 가정폭력특별법 등 관련법들은 만들어졌다. 하지만 법 제정을 넘어 우리사회의 의식이 사람을 존중하고 평화적인 감성으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길은 아직도 먼 듯하다.

‘우리는 사회적, 경제적 약자와 생태적, 문화적 소수자들을 치유하고 보살핌은 물론 이들을 삶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섬김과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간다.’(한국YMCA 100주년 비전선언문 중)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는 이 비전 실천을 위해 오늘도 뛰고 있다. 생명·평화적인 성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체험형 성문화 프로그램을 운영·보급하고 있고, 전화·인터넷·대면 등 다양한 상담 창구를 통해 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한다. 성폭력, 피·가해자, 성소수자, 임신청소년, 성매매피해 청소년도 지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을 삶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 자율적인 참여를 지원하는 다양한 모임활동을 펼치고 있다. YMCA 청소년성문화센터는 서울·목포·원주·광주·여수·강릉 등 6개 지역에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02-2677-9220).

이명화 센터장(YMCA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