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커튼’ 젖히면 지구 역사 보일까… 철원 한탄강 ‘얼음 트레킹’ 명소로 부상

입력 2014-01-16 02:31


강원도 철원의 직탕폭포는 그 형태가 독특하다. 흔히 보는 한국의 폭포와 달리, 한탄강 양안에 긴 보(洑)처럼 가로놓인 암반 위를 수직 낙하하는 물줄기가 멀리서 보면 마치 가로로 길게 쳐진 커튼 같다. 그래서 한국판 나이아가라로 불린다. 그 직탕폭포가 매서운 한파로 얼어붙기 시작하며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하얀 물보라에 휩싸여 굉음과 함께 쏟아지던 물줄기는 석회암동굴의 종유석을 닮은 고드름으로 변했다. 강은 흰 빙판이 됐다. 얼음 어는 소리가 인근 휴전선의 대포소리처럼 들리는 한탄강의 현무암 협곡 속으로 얼음 트레커들이 시간여행을 떠난다.

철원의 옛 북한 노동당사 앞에 위치한 소이산(362m)의 야트막한 정상을 자동차로 올라보라. 철원평야가 얼마나 넓은 지 한눈에 내려다보일 것이다. 한국전쟁 격전지인 백마고지를 비롯해 김일성고지, 아이스크림고지 등이 마치 망망대해에 떠있는 작은 섬 같다. 철원평야가 서울 북쪽에서 가장 넓은 평야(1억평)로 김일성이 북한의 곡창인 철원평야를 전쟁으로 빼앗기고 통곡했다는 이야기가 실감난다.

철원지역은 27만 년 전인 신생대에 철원 북방 오리산(453m)에서 화산이 폭발해 만들어진 용암대지이다. 분출된 용암이 추가령구조곡의 낮은 골짜기를 메워 철원, 평강, 전곡 일대에 약 650㎢(2억평)에 이르는 드넓은 들판이 형성되었다. 이 용암대지의 한 가운데가 침식되면서 생겨난 협곡이 한탄강이다. 북한에서 발원해 철원, 평강, 전곡을 거쳐 임진강과 합류하는 136㎞ 길이의 한탄강(漢灘江)은 후고구려를 세우고 철원에 도읍을 건설한 궁예가 왕건에게 패해 한탄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실제는 은하수 ‘한(漢)’자에 여울 ‘탄(灘)’자를 써서 순우리말로 ‘은하수 여울’이라는 뜻이다. 이름만큼 풍경이 아름답다.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현무암과 매끈한 화강암 바위 사이로 흐르는 한탄강이 전국 최고의 래프팅 명소로 각광받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용암과 시간이 빚어낸 한탄강의 절경은 동송읍의 직탕폭포에서 승일교까지 약 5㎞ 구간에 집중되어 있다. 한탄강 상류에 위치한 직탕폭포는 높이가 3m에 불과하지만 폭이 80m나 된다. 강물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여울이라고 해서 직탄(直灘)으로 불리다 훗날 직탕(直湯)으로 바뀌었다. 직탕폭포는 살아 움직이는 폭포로도 유명하다. 강물이 낙하하면서 강바닥의 주상절리가 깎여 폭포가 상류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폭포수가 하얀 커튼을 드리운 것처럼 보이는 직탕폭포는 꽁꽁 얼어붙은 빙판을 걸어 들어가 정면에서 볼 때 더욱 웅장하다. 커튼을 열어젖힌 듯 아직 얼음이 얼지 않은 폭포 중간에 검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주상절리가 선명하다.

직탕폭포에서 얼어붙은 강을 따라 하류 쪽으로 내려오면 태봉대교의 거대한 철구조물이 하늘을 가로지른다. 우리나라 최초로 다리 위에 번지점프장이 설치된 50m 높이의 태봉대교에서 밧줄에 몸을 묶고 비명을 지르며 깊은 계곡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진다.

하류 쪽으로 내려갈수록 협곡이 점점 높아지는 한탄강은 송대소에서 한탄강 최고의 절경을 빚어 놓았다. 송대소(松臺沼)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 아래로 수심 30~40m 깊이의 한탄강이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30m 높이의 협곡이 반원을 그리는 송대소 수직절벽은 한반도 내륙에서 가장 멋스런 주상절리로 협곡 전체가 ‘지질학 교과서’나 다름없다.

송대소 수직절벽 사이로 흐르는 한탄강의 빙판을 조심조심 걷다보면 마치 지구 내부로 여행을 떠나온 듯 신비로운 지층을 마주하게 된다. 수직절벽은 네댓 차례 용암이 흐른 듯 색상이나 모양이 다른 지층이 포개져 있다. 육각형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는 한탄강 양안이 서로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은 빙판 위에 쌓인 잔설을 걸을 때 나는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아닐까. 경쾌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선율에 취해 강심을 거닐다보면 갑자기 빙판 아래서 ‘쿵쿵’ 소리가 들려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대포 소리를 방불케 하는 소리의 정체는 얼음이 어는 충격음이다. 반면에 얼음이 녹아 갈라질 때는 ‘쩡쩡’ 소리가 난다고 한다.

빙판은 예상 밖으로 모든 곳이 미끄럽지는 않다. 최근 얼어붙은 빙판은 유리알처럼 미끄럽지만 잔설이 쌓여 있거나 오래전에 얼어붙어 표면에 이물질이 달라붙은 빙판은 마찰계수가 높아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아도 걷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송대소를 벗어나면 한탄강이 한반도 지도처럼 생긴 지형을 만난다. 아직 얼지 않은 여울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고 마당바위로 명명된 거대한 화강암 반석은 쉬어가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여인의 피부처럼 매끄러운 마당바위 옆에는 철 이른 버들개지가 한 움큼씩 피어 봄날을 기다리고 있다. 한반도 지형의 서해안에 해당하는 강변은 검은색 현무암과 하얀색 화강암 강돌이 뒤섞여 이곳이 화산암 지대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지질여행을 겸한 한탄강 얼음 트레킹은 한탄대교 옆에 위치한 승일교에서 막을 내린다. ‘한국판 콰이강의 다리’로 불리는 승일교는 1948년 북한 땅이었을 때 북한이 공사를 시작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중단됐다. 휴전 후 한국 땅이 되자 한국정부에서 완성했다. 그래서 남북합작 다리로 불리는 승일교의 이름은 한국전쟁 때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다 전사한 박승일 대령의 이름을 땄다는 설이 있다.

한탄강 얼음 트레킹 완주를 기념이라도 하듯 승일교 옆 야산에는 겨우내 강물을 끌어올려 얼린 거대한 고드름들이 지상의 용암동굴을 연출하고 있다.

철원=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