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의 힘?… 시청률 40%대 고공행진 KBS 2TV ‘왕가네 식구들’
입력 2014-01-16 02:31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 개그 프로그램 같아요. 작가한테 배신감이 느껴져요….”
KBS 2TV 주말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이하 왕가네) 공식 홈페이지 시청소감 게시판은 매주 토·일요일이 지나면 이 같은 글로 도배된다. 등장인물과 제작진을 비난하는 글들이 대부분. ‘조기 종영 요구’나 ‘시청 거부 운동’을 하겠다는 협박도 자주 등장한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는 방영 초기부터 ‘왕가네’를 따라다닌 별명 중 하나다.
◇막장 비난 거센데 시청률은 최고=중학교 교감인 왕봉(장용)과 주부 이앙금(김해숙). 이들 부부의 다섯 자녀와 어머니 안계심(나문희) 등 왕씨 집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린 ‘왕가네’는 부부·자녀간의 불화, 불륜에서 이어진 이혼, 시집살이, 겹사돈 등의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갈등 종합세트’다. 그럼에도 50부작 중 10회 만을 남겨둔 ‘왕가네’는 ‘꿈의 시청률’이라 불리는 시청률 50% 고지를 넘보며 순항하고 있다.
15일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2일 방송된 ‘왕가네’ 40회는 평균 시청률 43.2%(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을 또 한 번 경신했다. 전작인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의 최고 시청률 30.8%(48회, 전국 기준)보다 13% 포인트 가량 높은 수준. 또 다른 시청률 조사기관인 TNmS에 따르면 이날 ‘왕가네’의 수도권 시청률은 45.9%나 됐다. 동시간대 방영되는 유일한 지상파 드라마라는 점, 황금시간대(오후 8∼9시)에 무작정 채널을 틀어 놓는 ‘습관적 시청층’이란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40% 중반대의 시청률은 상당한 수준이다.
드라마엔 ‘현실성 제로’인 설정들이 가득하다. 극 중 왕봉의 둘째 딸 호박(이태란)은 외도하는 남편 허세달(오만석)을 붙잡기 위해 자작 납치극을 벌인다. 셋째 딸 광박(이윤지)의 시아버지 최대세(이병준)는 결혼을 반대하면서 며느리 서바이벌 오디션을 연다. 첫째 딸 수박(오현경)은 내연남 허우대(이상훈)에게 속아 아버지의 집문서를 홀랑 날리고 가족들의 등쌀에 가출을 결심한다. ‘콩가루 집안’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이야기’라는 혹평이 따를 법한 설정이다.
◇“뻔한 권선징악 구조” VS “마당극 같은 풍자에 위안”=결말은 뻔하지만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힘, 좋든 싫든 시청자를 TV 앞으로 끄는 ‘왕가네’의 힘은 무엇일까. 평론가들은 권선징악의 구조 안에서 ‘악역이 어떻게 망하는지 보자’는 시청자들의 심리를 드라마가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주인공의 가족 구성원들이 돌아가며 민폐 캐릭터를 맡고 있는 전형적인 막장극”이라며 “보기 싫은 캐릭터가 망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청자들이 울분을 터트리면서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정석희 평론가는 “중장년층에겐 그 시간대 드라마가 한 주를 살며 나누는 얘깃거리가 된다”며 “이 때문에 내용이 보기 불편해도 시청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왕가네’가 전통 마당극처럼 과장된 시선으로 팍팍해진 현실사회를 풍자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살기 어려워지는 요즘 허무맹랑하게 망가지는 캐릭터들을 보면서 ‘우리 가족은 저 정도까진 아니야’라며 위안을 받거나 상대적 우월감을 느낀다”고 ‘왕가네’의 인기 요인을 설명했다. 그는 “집 장만, 결혼, 교육, 돈 등 우리네 삶의 단면들을 과장되게 그리고 있다”며 “시청자들은 장면 장면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문보현 KBS 드라마 책임프로듀서(CP)는 “왕봉 부부가 보여주는 서민으로서의 애환을 비슷한 나이대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있다”며 “크고 작은 사건이 박진감 있게 이어지고 악역들이 탄탄한 연기력으로 극을 받쳐주고 있는 점을 시청자들이 높이 사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