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고승욱] ‘디지털사회葬’ 논의할 때다
입력 2014-01-16 01:33
최근 국민일보 디지털뉴스센터에는 과거 기사를 삭제해 달라는 전화가 크게 늘었다. 주저하다가 어렵게 용기를 내 전화한 듯한 목소리로 “기사를 지워 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인터넷에서 더 이상 검색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기사는 대부분 5년이 넘은 것들이다.
심지어 기사를 쓴 기자가 이미 정년퇴직한 15년 전 것도 있었다. 기사삭제를 요청한 사람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서 갔다가 드디어 출소한 것일까?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파렴치하게 사람들을 속인 사건을 고발한 기사의 당사자일까? 아니다. 삭제요청을 받고 해당 기사를 찾아보면 역경을 딛고 성공했거나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이야기를 소개한 미담기사가 대부분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평생 자랑해도 모자랄 좋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인터넷에 남아있는 자신의 흔적을 부담스러워하다가 전화를 한 것이다.
갑자기 늘어난 기사삭제 요청
기사 삭제 여부를 결정하고, 절차를 진행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처음 신문사에 입사할 때부터 “신문기사는 역사의 기록”이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수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기사가 영원히 사라져도 괜찮은 것일까? 단순히 당사자가 요청했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팩트’가 없어져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기사를 찾아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실제로 삭제 요청이 들어온 기사에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개인정보가 지나치게 많이 담겨 있었다. 사는 곳은 물론이고 자녀들의 이름과 나이가 들어간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렵게 털어놓은 과거사 때문에 결혼을 앞두고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 기사를 검색하면 그보다 훨씬 심한 사례가 수없이 발견된다. 1991년 한 신문에 실린 기사다. ‘○○○씨 집 안방에서 △△△씨가 내연관계인 ○씨의 부인 □□□씨와의 간통고소 취하를 요구하며 □씨의 두 딸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였다.’ 이 기사에는 ○씨가 사는 아파트의 동·호수, △씨와 □씨의 나이·주소는 물론이고 인질로 잡힌 10세 안팎의 아이들의 실명과 나이가 나온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때는 모두 그렇게 기사를 썼다. 1980년대 초반까지 신문 사회면 하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연탄가스 질식사 기사에는 반드시 숨진 사람의 사진이 실렸다. 일부 기자는 사진을 구하기 위해 빈소에서 영정사진을 들고 나오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퇴장’ 보장하는 통로 필요
개인정보 보호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침에 배달돼 다음날 버려지는 신문지에 담긴 개인정보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알게 된 개인정보가 범죄에 이용되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검색어를 치면 개인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한 화면에 뜬다. 범죄를 위해 개인정보를 돈 주고 사는 세상이다. 수수료만 내면 인터넷에 남은 흔적을 깨끗이 지워주는 디지털 세탁소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다. 유언장에 평생 사용하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남겨 후손들에게 정리를 부탁하기도 한다. 여기에 인터넷에서 자신의 흔적을 스스로 지워나가는 것까지 포함한 ‘디지털 장례식’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자신을 소개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지 못하도록 하는 ‘잊혀질 권리’가 더 중요한 시대다. 물론 스스로 조심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과거에 별다른 생각 없이 알렸던 ‘내 이야기’를 회수할 통로는 필요하다. 개인에게만 맡기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인터넷에서 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디지털 사회장(社會葬)’을 논의할 때가 됐다.
고승욱 온라인뉴스팀장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