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임만호 (17·끝) “교회와 크리스천은 항상 손해나는 일을 해야”

입력 2014-01-16 01:32


우리는 누구나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알아야 한다. 초·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문서선교의 자질과 열심을 주신 것은 오늘에 와 보니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크게 느낀다.

특별히 내가 붙들었던 문서선교 철학은 홍정길 원로목사님과 남서울은혜교회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1975년 설립된 서울 반포 남서울교회는 10년 만에 장년 수가 3500명으로 늘었다. 7개 교회를 분가시켰으나 교인 수는 줄지 않았다.

87년 신년 예산 당회에서 홍 목사님이 두 가지를 제안했다. “땅을 사서 교회를 크게 짓는 것보다 학교를 지어 인재를 육성하고 주일에는 강당이나 교실을 활용합시다. 그리고 인간의 생활이란 기본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사찰집사님이 나와 비슷한 연령인데다 식구 수가 같으니 본봉 차이가 없도록 해주세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당회원들이 완강하게 맞섰다. 그러나 홍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식생활의 원칙을 따라 해 달라”며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당회원들은 사찰집사 본봉과 담임목사님의 본봉을 동일하게 책정했다.

홍 목사님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교회를 이전할 때도 그랬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료로 주셨습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에게도 돈을 받거나 대가를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다음 인수자를 위해 빗자루 하나도 가져가지 않겠다고 당회에서 결의해 주세요.”

당회원들은 홍 목사님의 순수하고 정열적인 교회론에 동의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였다. 교회를 개척하는 마음으로 전 교인이 헌금에 동참했다. 그럴수록 교인들은 몰려들었다.

1992년 1월 서울 일원동 중동고에서 250명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고 95년 10월 남서울은혜교회를 세웠다. 우리는 기독교 학교 운영이라는 본래 취지대로 장애인 학교 설립에 들어갔다. 때마침 일원본동에 3200평의 초등학교 부지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회에선 자발적으로 32억원을 준비했고 장애인 학교인 밀알학교를 건축했다. 97년 밀알학교가 완공된 후 교회는 예배실을 체육관으로 옮겼고 현재까지 활용하고 있다.

홍 목사님과 당회는 또다시 어려운 결정을 했다. ‘남서울은혜교회가 밀알학교 건축비 400억원을 내놓았고 밀알복지법인에 정식 헌납했다. 따라서 밀알학교는 우리 교회 건물이 아니다, 매년 3억원 이상의 대관료를 지불한다.’ 교인들은 ‘교회와 크리스천은 항상 손해나는 일을 해야 한다’는 홍 목사님의 철학에 따라 섬김에 적극 나섰다.

세월은 빨리 지나간다. 우리는 30대에 남서울교회를 개척했고 50대에 남서울은혜교회를 세웠다. 밀알학교를 짓고 개척교회 17개와 블라디보스토크 국제학교를 지었다. 그러고 나니 나도 은퇴 장로가 되고 홍 목사님도 만 70세가 되어 은퇴할 시기가 됐다. 교회에선 홍 목사님께 “70세 나이가 꽉 차는 2012년 말까지 교회를 이끌어 달라”고 간청했다. 퇴직금은 15억원을 책정했다. “아닙니다. 만 70세면 족합니다. 70세 생일에 곧바로 은퇴하겠습니다. 퇴직금도 절반만 받겠습니다.” 그나마 절반의 퇴직금도 러시아 국제학교 증축과 기독교 기관에 헌금했다.

나는 이런 홍 목사님과 60여년간 동행했다. 홍 목사님의 ‘손해 보는’ 목회철학은 나의 문서선교 사역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예수님 앞에까지 가서도 홍 목사님과 교회, 출판 등 재미있는 이야기로 바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