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가 성경에 관심을 쏟는 이유?
입력 2014-01-14 19:35
브래드 피트가 본디오 빌라도를 연기한다. 러셀 크로는 노아의 방주를 타고 항해한다. 크리스천 베일은 히브리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모세가 된다. 미국 할리우드가 톱스타를 대거 동원한 블록버스터 성경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무려 6편이다. 1950~60년대 ‘십계’ ‘엑소더스’ ‘벤허’ ‘쿼바디스’ ‘삼손과 데릴라’ 등을 내놓았던 할리우드가 반세기만에 다시 성경에 눈을 돌리고 있다.
다음달 28일 미국 전역에서 개봉될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은 지난해 케이블TV 히스토리채널에서 10부작으로 방송한 미니시리즈 ‘더 바이블’ 중 예수의 일대기 부분을 영화로 제작한 작품이다. 포르투갈 출신의 배우 디오고 모르가도가 예수 역할을 맡았다.
‘더 바이블’은 매회 1000만명 이상이 시청해 방송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제작자 마크 버넷은 9일(현지시간) 데일리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황금시간대에 성경 이야기를 방송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모두들 말렸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기독교인 시청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3월에는 ‘레미제라블’ ‘글래디에이터’에 출연했던 톱스타 러셀 크로가 주연을 맡은 ‘노아(Noah)’가 극장을 찾는다. 앤소니 홉킨스, 제니퍼 코넬리, 엠마 왓슨 등 출연진도 쟁쟁하다. 1억3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동원해 할리우드 최고의 특수효과로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 등 창세기 시대를 재현한다.
1956년 ‘십계’라는 제목으로 제작돼 세계적으로 흥행한 출애굽기의 이야기도 21세기 버전으로 다시 만들었다. ‘블레이드 러너’의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맡은 2014년판 ‘엑소더스(Exodus)’에서는 ‘배트맨’의 주인공 크리스천 베일이 모세를 연기한다. 릴리전뉴스서비스는 10일 “십계에서 모세 연기를 한 찰톤 헤스톤과 크리스천 베일을 비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당시의 흥행을 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리우드의 분위기를 전했다.
올 성탄절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주인공으로 한 ‘마리아-그리스도의 어머니(Mary, the mother of Christ)’도 개봉될 예정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이밖에도 윌 스미스가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있고, 브래드 피트는 ‘본디오 빌라도’의 주연을 맡았다. NBC방송국도 ‘더 바이블’의 히트에 자극을 받아 2015년 방송 예정으로 ‘A.D.’의 제작에 착수했다.
할리우드가 이처럼 성경 이야기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배트맨’ ‘스파이더맨’ ‘슈퍼맨’ 등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웅담에서 벗어나 새로운 흥행 소재를 찾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종교적 메시지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데일리비스트는 분석했다.
더 바이블과 헐리우드에서 제작하는 블록버스터 성경 영화의 특징은 정통적인 해석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2003년 전세계에서 개봉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반유대주의 해석을 가미해 논란을 일으켰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도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듯한 내용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몬트리올 예수’ ‘요한복음’ 등도 예수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할리우드가 다시 정통적인 관점으로 돌아온 것은 시사점이 크다. 제작자 버넷은 “금융위기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신앙을 찾고 있고, 릭 워런이나 조엘 오스틴 같은 유명 목사의 설교는 수백만 명이 시청한다”며 시대가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노아 제작사 파라마운트는 뉴욕의 기독교인을 상대로 시사회를 한 뒤 관객의 지적을 받고 내용 일부를 고치기까지 했다.
또 다른 제작자 로마 다우니는 “영화 십계를 본 아이들이 ‘형편없다’고 얘기해 첨단 특수효과에 익숙한 세대를 위해 성경을 다시 영화화하면 강력한 작품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기독교 우파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 임기 때에는 기독교인들이 종교색을 드러내길 오히려 꺼렸지만, 지금은 그런 심리적 장애가 없어졌다는 점도 할리우드가 성경 영화 제작에 뛰어든 이유 중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하지만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성경의 인물을 할리우드식 슈퍼히어로로 묘사하거나, 성경의 진정한 주제인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보다는 전쟁과 복수 같은 자극적인 볼거리에 치중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 조현기 부집행위원장은 “성경은 이미 검증된 콘텐츠인데다 미국에서만 7000만~1억 명의 관객층이 있어 상업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전한 작품들”이라며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의 기독교인들이 소명을 가지고 기획·제작에 앞장선 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80년대 초까지 다양한 기독교 영화들이 제작되다 명맥이 끊겼지만 최근 들어 ‘소명’ 시리즈와 지난해 개봉된 ‘블랙 가스펠’ ‘뷰티풀 차일드’ 등 다양한 작품이 등장하고 있다”며 “이들 작품도 독립영화 시장에서는 기본적인 관객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올해도 북한의 지하교회를 다룬 ‘신이 내린 삶’과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선보여 좋은 평가를 받았던 ‘시선’ 등이 상반기 개봉될 예정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