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외면한 돈, 상가 권리금 해부] 기획부동산까지 가세 권리금 가로채… 약탈 피해사례 어떤게 있나
입력 2014-01-15 02:33
열일곱 살 나이에 상경해 배달 일을 시작한 신금수(53)씨는 1995년 서울 종로구청 인근에 중화요리집 ‘신신원’을 열었다. 쉬지 않고 쓰지 않고 모은 돈으로 일군 일터였다. 권리금 1억3500만원을 낸 신씨 부부는 따로 요리사도 고용하지 않고 18년간 함께 일했다. 꽤 입소문이 난 음식점이 됐다. 하지만 2012년 10월 갑작스러운 ‘제소 전 화해조서’가 날아왔고 졸지에 권리금도 못 받고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건물주가 작성해 온 조서는 보증금 1억원, 월임대료 650만원으로 대폭 올려주든지 보증금 6500만원에 월임대료 320만원의 원계약을 유지하되 1년만 영업을 하고 조건 없이 가게를 비우는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신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을 했다. 1년만 더 하는 조건이었다. 그는 가게를 다음 세입자에 넘겨 권리금이라도 되찾으려 했지만 건물주는 주변 시세보다 높은 월임대료로 세입자를 구하길 강제해 그마저 차단해 버렸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14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한 ‘상가권리금 약탈 피해사례 발표회’에는 신씨와 같은 피해자들이 피눈물을 쏟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신씨는 문제의 핵심이 권리금이라고 했다. 주변 시세를 반영한 권리금이 무려 2억원을 상회하기 때문에 건물주가 양도를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신씨는 “건물주가 부동산을 운영하는 동생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두 차례나 같은 방식으로 권리금을 가로챈 전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신씨 가족은 가게에서 먹고 자며 건물주의 강제집행 요구에 맞서고 있다.
2011년부터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곱창포차’를 운영해 왔다는 최준혁(54)씨도 유사한 경우다. 25년 경력의 곱창전문 요리사인 최씨는 아파트를 담보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 6억원가량을 투자해 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개업 2년이 채 안된 2012년 11월 최씨 모르게 입주한 건물이 매매되며 하루아침에 내쫓길 처지가 됐다.
최씨는 “기획부동산들이 개입해 상가세입자의 권리금을 노리는 이런 피해가 홍대와 신촌 상권에 속출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개업 당시 얻은 대출 때문에 현재 사는 아파트까지 잃을 처지가 된 그는 “너무 절망적이라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심정”이라고 울먹였다.
신가람(32)씨도 홍대 인근 단독주택 반지하 공간을 빌려 주점을 차렸으나 건물주가 바뀌며 곤란에 처했다. 신씨는 개업 6개월 만에 부동산에서 건물주가 바뀌었다고 연락이 왔고 월세를 배 가까이 올려 달라는 요구를 거부하다가 건물주에게 명도소송을 당했다. 그는 “주변 세입자들 모두 ‘차라리 조금만 깎아 달라고 사정해야지 법을 들이대면 쫓겨난다’고 만류하더라”며 “월세를 두세 배 올려주는 이들도 부지기수”라고 울분을 토했다.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보상’을 넘어 ‘보장’으로 이어지는 상가세입자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용산참사추모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용산에서 부서진 것은 건물이 아닌 삶이듯 상가세입자들이 빼앗기는 것도 권리금이 아니라 삶”이라며 권리금의 합리적 보장을 입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