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외면한 돈, 상가 권리금 해부] 상인들이 일군 무형의 가치… 법의 보호받는 영국과 프랑스
입력 2014-01-15 01:36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마포구 홍대 앞, 용산구 이태원…. 상인들의 노력으로 평범했던 공간이 문화적 가치를 부여받은 곳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끌어올린 상권의 가치는 고스란히 건물주들에게 돌아가곤 한다. 우리나라 임차상인들은 ‘재주 부리는 곰’이 되기 쉽다.
영국과 프랑스의 임차상인 보호 제도는 이런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들이 장사하면서 만들어낸 영업 노하우, 단골손님, 가게에 얽힌 이야기 등도 지적재산권처럼 보호해야 할 가치로 여기는 철학이 깔려 있다.
영국은 과세표준가액(rateable value)을 기준으로 한다. 임차상인이 장사를 잘해서 건물의 가치를 올리면 그에 따라 보상한다는 논리다. 예를 들어 런던 몬머스 지역에 있는 연면적 58.2㎡ 건물은 과세표준가액이 4만5598파운드다. 이 건물 1층의 A점포(24.70㎡)는 3만4580파운드, B점포(11.30㎡)는 7910파운드, 지하 점포(22.20㎡)는 3108파운드 등으로 점포마다 과세표준가액이 정해져 있다. 이 금액에 소관부처 장관이 정하는 승수를 곱하면 보상액이 산출되며 현재 ‘1’로 책정돼 있다. 만약 건물주가 A점포 임차상인을 내보내고 싶으면 그에게 3만4580파운드를 줘야 하는 것이다.
영국은 또 장사한 기간이 길수록 점포 가치가 높다고 본다. 한 점포에서 14년 이상 영업한 경우 이 건물주가 내보낼 때 지불해야 할 보상액은 2배가 된다. 그만큼 점포의 전통을 중시하고 여기서 비롯된 무형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다. 만약 내보내려는 임차상인이 60세 이상이라면 더 많은 ‘영업 폐지 비용’을 줘야 한다. 고령이라 더 이상 다른 곳에서 장사하기 어려울 테니 건물주가 더 보상하라는 취지다.
프랑스도 비슷하다. ‘영업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정립돼 있다. 건물주가 임차상인과 계약을 해지하려면 보상을 해야 한다. 영업 소유권의 시장가치, 철거와 재설치 비용, 세금 등이 포함된다. 하나의 소유권이어서 점포를 다른 임차상인에게 넘길 때 건물주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반면 우리나라나 일본은 이 경우 건물주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구조다.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영두 교수는 “영국 프랑스 일본의 제도도 임차상인이 일궈놓은 가치를 100% 보상해주지는 못하지만, 계약이 끊길 때 건물주에게 보상 의무를 지워 장기 계약을 유도한다”며 “이는 임차상인의 충격을 덜어줘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취재팀=태원준 차장 이도경 박세환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