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해진 기독인… 복음만이 치유할 수 있다

입력 2014-01-15 01:36


복음에 더할 것은 없다/앤드류 팔리 지음/터치북스

영성공동체 ‘모새골’ 설립자인 임영수 목사는 지난해 10월 국민일보 창간 25주년 기념 콘퍼런스에서 “물질과 권력, 명예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유발한다”며 “복음은 영혼에 대한 갈망으로 신음하는 사회를 치유한다”고 말했다. 오직 복음만이 이 시대의 희망이요, 대안이란 이야기다.

복음은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복음은 익숙한 단어다. 늘 갖춰 입는 옷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를 치유하는 유일한 희망으로 복음을 말한 것은 그만큼 이를 잊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래서 새해 한국교회는 외친다. “오직 복음으로 돌아가자.”

이 책은 ‘21세기 본회퍼’로 불리는 복음주의 신학자요, 미국 텍사스 에클레시아교회를 담임하는 저자가 예수님 옆에 율법을 나란히 세우고 왔다 갔다 하는 요즘 그리스도인들의 나약함을 치료하기 위해 썼다. 복음 안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율법 안에 살고 있는가를 묻는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율법(종교)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데 예수님이라는 ‘복음’ 외에는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이미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진짜 문제는 우리가 소유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15쪽)

그래서 저자는 율법을 벗고 복음의 본모습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가령 십일조, 죄책감, 무조건적 용서, 은혜 등 율법의 굴레에 얽매어 혼돈할 수 있는 복음에 대해 저자는 성경 말씀을 들어 자세히 풀어준다.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 눈에 띈 제목이 있다. ‘십일조는 없다.’ 사실 십일조는 구약 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전통이다. 많은 교회들이 이 생활에 대해 강조한다. 성도들 역시 이를 지키려고 애쓴다. 교회들에서 십일조를 내도록 ‘규정’하지 않으면 교회 재정을 운영하는 게 힘들지도 모른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십일조에 관해 딱 세 번 언급 하셨다(눅 11:42, 눅 18:11∼14, 마 23:23). 그것도 바리새인들을 꾸짖을 때 하신 말씀이다. 그들은 정해진 비중의 헌금을 냄으로써 자신들이 올바르다고 생각했고, 자만심으로 가득 차서 다른 사람들을 정죄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단호하게 하신 말씀이다. “율법을 더 중요시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다.”

그러므로 십일조에 대한 본모습은 이것이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8) 바울은 부담감 때문에 ‘억지’로 내는 것을 경계했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십일조에 대한 의무감을 심어주지 말고, 오히려 성도들의 헌금에 대한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은혜로 드리는 헌금’은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율법적인 십일조’는 폐지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갑을 깔고 앉아 망설여서는 안 된다. 또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인색한 마음을 ‘자유로운 헌금’으로 포장해서도 안 된다. 저자는 “은혜 아래서 하나님께 받은 선물의 일부, 때론 전부를 자발적으로 드리는 ‘특권’을 누리라”고 강조한다.

생각해보면 율법은 언제나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더 많이 바치고 헌신함으로써 하나님과 가까워지라, 성령이 더 필요하다, 용서가 더 필요하다는 식이다. 이에 현혹돼 더 많은 세미나와 부흥회를 찾곤 한다. 그러나 복음의 핵심인 예수님은 “최대한 내 안에서 안식하라”고 권면한다. 주님 안에서 평안, 안식, 자유함을 누리면 된다. 이미 그분은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내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에 더할 것은 없다’란 말이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