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추기경 서임 ‘교황 스타일’

입력 2014-01-15 01:35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동안의 관행을 깬 ‘파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단행한 추기경 서임에서 교황청을 장악해 온 유럽 출신을 철저히 배제하는가 하면, 신임 추기경들에게 축하연을 삼가는 등 모범을 보일 것을 당부하며 본인은 빈민시설 확충을 위해 고급 오토바이를 내놨다.

교황이 12일 발표한 신임 추기경 명단에는 남미(5명), 아시아(2명), 아프리카(2명) 출신 사제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교황 선출권이 있는 신임 추기경 16명 중 과반이 비(非)서구권 출신이다. 아이티, 부르키나파소, 니카라과,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 등 경제적으로 어렵고 조그만 나라의 젊은 사제들도 임명됐다. 오랫동안 추기경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필리핀의 사제도 포함됐다. 그동안 추기경단이 유럽과 북미 출신 위주였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치다. 이번 인사는 유럽 출신 위주였던 교황청의 지배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성직자 성추문과 바티칸 은행의 돈세탁 의혹으로 실추된 가톨릭의 명예를 회복하고 교황청 내 위계주의를 해소하기 위한 개혁 작업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지배구조 쇄신에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고, 뉴욕타임스(NYT)는 “교황의 시선이 가난한 나라로 향하고 있다”며 “획기적인 인사”라고 전했다.

서임 사실을 알리는 과정도 기존과는 달랐다. 이번에 임명된 염수정 추기경은 본인의 서임 사실을 뉴스를 보고 연락해 온 지인들을 통해 처음 안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적으로는 임명 하루 전에 미리 통보를 해 대상자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이번 인사에 대해 ‘기습 인사’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교황은 신임 추기경들에게 13일 서한을 보내 축하연 등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추기경은 명예로운 자리라기보다 봉사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그는 “겸손의 길을 걸은 예수의 모범을 뒤따라 달라”며 “(추기경은) 세속적이거나 축하연을 할 만한 자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본인의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내놨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보도했다. 교황은 지난해 6월 이탈리아 로마에 모인 전 세계 오토바이 마니아에게 미사를 집전한 자리에서 할리데이비슨을 선물로 받았다. 그는 ‘홀리 할리’라고 이름 붙여진 이 할리데이비슨을 넉 달 후 로마 교구 가톨릭 구호재단에 기증했다. 다음 달 6일 프랑스 파리에서 팔릴 예정이고 수익금은 빈민 급식시설 공사에 사용된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