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사법연수원 불륜 커플’ 보도했지만… 인터넷서 덧칠하는 ‘주홍글씨’ 없어야

입력 2014-01-14 17:40 수정 2014-01-15 15:59


“딸이 마포대교에 있다더군요. 못된 마음이라도 먹을까 울고불고 매달렸습니다. ‘딸아, 제발 그러지 마라, 딸아∼’하면서 얼마나 애타게 휴대전화에 소리를 쳤는지 아무도 모를 겁니다.”

딸 이야기를 하는 아버님의 눈시울이 달아올랐습니다. 제 기사가 부녀(父女)에게 이런 고통을 안겼다니, 착잡하네요.

오늘 저는 ‘사법연수원 불륜 커플’ 사건의 후속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아직 진상이 규명된 사건이 아니니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인터넷에서 덧입혀지는 ‘주홍글씨’는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해 9월 12일 “성관계 카톡까지 보여주며 딸 괴롭혀”… ‘사법연수원 상간 커플’ 사건 파문 확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기사에서 사법연수원 동기 사이인 A씨(32)와 B씨(29·여)가 불륜을 벌여 A씨의 아내 C씨(당시 30)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C씨 유족의 주장을 담았습니다. 특히 B씨는 A씨와 은밀하게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C씨에게 보여주며 괴롭혔다는 충격적인 진정서 내용을 실었습니다.

기사가 나간 지 꼭 4개월만인 14일 B씨의 부친을 여의도에서 만났습니다.

B씨 부친은 기사 나간 뒤 큰 고통을 겪었다고 토로했습니다. 다른 매체도 사건을 많이 보도하지 않았느냐고 하니 제 기사가 인터넷 마녀사냥의 도화선이 됐다고 항변하네요.

억울하답니다. 딸(B)은 A씨와 2012년 8월부터 8개월간 사귄 잘못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기혼 사실을 숨기고 B씨에게 접근한 A씨는 2013년 2월에야 아내의 존재를 고백했고, 두 달 뒤 B씨에게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B씨는 사법연수원에 A씨의 총각행세를 알릴까 고민하다 같은 해 5월 4일 C씨에게만 이를 알렸고, 이어 5월 13일 ‘다시는 A씨와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 C씨 가족에게 전한 뒤 A·C씨와 일절 접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이혼 종용이나 협박 및 괴롭힘은 없었다고 주장하네요. 그런데 C씨가 같은 해 7월 31일 숨졌습니다. C씨 유족이 B씨를 ‘살인자’라고 몰아세우며 법조인 자격이 없다는 시위를 벌였고요.

B씨 부친은 인터넷 여론에 휩쓸려 정직 3개월의 과도한 처분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무차별적인 인터넷 여론재판이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포털사이트엔 지금도 B씨의 이름과 나이, 얼굴, 주소, 학벌, 전화번호 등이 쉽게 검색됩니다. 일부 네티즌은 B씨가 A씨로부터 받은 C씨의 물품을 인터넷 카페에 내다 팔았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며 B씨를 ‘패륜녀’로 몰아세우기도 했고요.

네티즌의 공격에 B씨가 극단적인 마음을 먹은 적도 있다네요. B씨 가족은 이 일로 이사를 했습니다. 인터넷에 동과 호수까지 노출돼 겁이 났다고 합니다. 심지어 친척들조차 말을 걸지 않는다고도 하고요.

B씨 부친은 딸을 위해 끝까지 싸울 생각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에 나도는 말만 믿고 딸을 욕보인 수많은 네티즌과 인터넷 카페 등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벌인다고 합니다. 이미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변호사도 선임한 상태라는데요.

반성합니다. 애초 제 기사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제가 불친절하게 기사를 써서 누군가 애꿎은 돌멩이를 맞은 것은 아닌가하고 말이죠.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