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성태윤] 위험한 공공요금 인상

입력 2014-01-15 01:34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은 위험한 현상이다. 물가가 하락하면 경제는 경기침체에 직면하는데, 앞으로 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기업은 투자를 축소하고 가계는 현재 소비를 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반 물가뿐 아니라 자산가격의 하락까지 기대된다면, 미래소득 감소도 의미하므로 추가적인 소비 축소로 이어져 상황은 악화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가 돼 물가가 실제 하락해야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명목상으로는 물가상승률이 플러스라도, 물가안정 목표로 경제주체들이 기대하는 수준 이하에 물가상승률이 머문다면 부정적인 효과는 비슷하다. 따라서 실제 물가상승률은 0%대로 낮아도 민간경제주체의 기대 물가상승률이 2.9%여서 디플레이션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2013∼15년 한국은행의 중기 물가상승 목표는 2.5%에서 3.5% 사이인데, 거의 20개월 동안 물가상승률이 목표 하한에 미치지 못하고 상당 기간을 계속해서 0%대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우리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통계청이 물가산정 가중치를 바꿔 2013년 12월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1%였지만 예전 기준에 따르면 0.9%로 사실상 0%대 수준이다.

물론 매 순간 물가목표를 맞출 수는 없다. 하지만 목표 범위에서 계속 이탈하다가 평균으로 달성하면 된다는 생각 역시 적절하지 않다. 2.5%에서 3.5% 범위에서 안정적으로 물가를 관리하라는 것이지, 대부분 기간을 0%, 또 어떤 때는 5% 상승해서 평균으로 2.5% 도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런 상황은 통화정책이 물가관리에 사실상 실패한 경우이다. 물가목표 하단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필요 이상으로 경기침체가 계속됐거나 기업실적이 악화되고 고용이 창출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최근 공공요금 인상 논의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핏 보면 물가상승률이 목표 하단에 도달하지 않았으므로 공공요금을 인상시켜 중기 물가상승 목표에 달성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위험하다. 물가가 목표하단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보다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가계채무 부담을 낮추고 자산가격의 하락을 막아 실질소득을 증가시킴으로써 민간소비를 늘려 경기회복을 만들어낼 여력이 있다는 의미이지, 공공요금 인상으로 물가인상률 수치를 맞춰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만약 현재 상황에서 공공요금이 인상되고 이에 따라 물가가 올라가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같지만 실제 원인과 효과는 오히려 정반대인 ‘관측상으로 동일하지만(observationally equivalent)’ 심각한 부작용을 지닌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즉, 가계실질소득을 감소시키고 민간 소비여력을 축소시켜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키는 것이다. 마치 침체된 경제에 오일쇼크가 오는 것과 유사하다. 1990년대 일본이 걸어갔던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희망하는 것이지, 1970년대식 비용인플레이션에 휘말리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개별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사정에 따라 방만한 경영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가피하게 요금인상 요인이 누적되었거나, 가격을 변화시켜 자원배분의 왜곡을 줄임으로써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비용 및 지출구조를 면밀히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디플레이션 상황을 공공요금 인상의 빌미로 삼거나, 전반적인 공공요금 움직임이 거시적인 물가상승으로 연결되도록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원하는 물가상승은 민간소비 및 투자를 늘리는 수요 확대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지, 공공요금 인상으로 민간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공급축소형 물가상승과 이에 따른 경기침체는 결코 아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