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아베에 뿔난 일본 시민사회
입력 2014-01-14 01:33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로 제대로 된 새해를 맞을 수 없게 됐다.” “더 이상 제 맘대로 하도록 아베 총리를 내버려둬선 안 된다.” “아베가 스스로 묘혈을 팠다고 본다.”
일본의 지인들과 연말연시 이메일로 새해 인사를 주고받은 내용 중 일부다. 지난달 26일 아베 신조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면서 일본 시민사회는 적잖은 충격에 빠진 듯하다. 원래 직설화법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그들이지만 강한 표현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엿보게 한다.
지난해 11월 아베 정권이 밀어붙인 특정비밀보호법도 불만이었다. 한 목사는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고 있으니∼”(디모데후서 2:7)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 안보를 내세워 국민의 자유를 빼앗으려 한다고 규탄했다. 겉으론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제도적으로는 강한 권한을 확보할 수 있는 통치 시스템, 즉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국가기밀의 기준도 분명치 않은 가운데 문제의 관심을 원천봉쇄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은 권위주의 체제 작동에는 호조건이다. 그런데 아직 일본에는 두 눈 부릅뜨고 있는 시민들이 존재한다. 지난 12월 초 법안이 통과한 직후 NHK의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 지지율은 전달보다 10% 포인트 하락한 50%로 취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교도통신 조사에서는 ‘법안 수정해야’ 54.1%, ‘폐지해야’ 28.2% 등 부정적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는 특정비밀보호법으로 떨어지는 지지율 회복을 위한 또 다른 책동이었다. 12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지지율은 다시 60%대로 올라섰다. 일본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의 지지세력 결집은 일단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럼에도 상황은 아베 정권에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해 말 교도통신의 여론조사 결과는 아베의 참배에 대해 ‘좋지 않다’가 47.1%로 ‘좋다’(43.2%)를 소폭이나마 웃돌았다. 아베 총리의 보수우익적 행보에 적극 지지를 보내온 산케이신문 조사에서도 ‘반대’가 조금 더 많았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부 일본 정치가들의 몰역사적 행보가 요즘 들어 더욱 두드러져 보이지만 일본 시민사회에는 일본국헌법, 즉 평화헌법의 가치를 두둔하고 지키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에 대한 비판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일본 시민사회의 존재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지금 정치·외교적으로 한·일 관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음에도 양국 시민사회의 연대가 더욱 요청되는 까닭이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