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현종] 의원입법 남발은 막아야
입력 2014-01-14 01:33
지난해 12월 31일과 올해 1월 1일 새벽 사이 113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또 113개 법률 중 58%에 해당하는 65개 법안은 가결 당일 혹은 가결 전날에 제안됐던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의원입법이 신중한 검토 절차 없이 여야 간 정치적 합의만 있으면 얼마나 쉽게 법안을 가결시킬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사례다. 정치권은 가결된 법률안 대부분이 소관 상임위원회의 발의안이거나 여러 의원안을 종합한 대안이었다는 점에서 여야 간 사전적 합의사항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발의안에 대한 숙고 없이 졸속 처리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의원입법에 대한 신중한 검토 절차가 없다보니 16대 국회 이후 의원발의안의 가결 건수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15대 국회시절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 수는 1144건에 불과했으나 지속적으로 증가해 18대 국회의 경우 1만2220건으로 늘어났다. 18대 국회 시절 정부가 제안한 법률안 수(1693건)의 7.2배에 해당하는 법률안을 의원들이 발의했던 것이다. 이러한 추세로 15대 국회 이전까지는 정부발의안의 가결처리 수가 더 높았으나 의원발의안 가결 수가 증가해 18대 국회에선 정부제안 가결 건수의 2.4배에 이르렀다.
정부제출 법률안과의 비교가 중요한 이유는 검토 절차에 있다. 정부제출 법률안은 입법예고, 규제심사, 국무회의 심의 등 다양한 사전심사 과정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의원발의안은 국회 법제실의 임의검토 과정만을 포함하고 있는 등 현저하게 간소하다. 정부제출안에 대한 규제영향평가를 처음 도입했을 당시 규제개혁위원회로부터 철회되거나 수정받았던 정부제출안 비율이 상당한 수준이었으나 제도 정착과 더불어 정부부처가 사전검토 과정을 의식하면서 정부제출안의 철회·수정률도 감소됐다.
그런데 정부제출안이 엄격한 사전심사 절차를 통해 검토되고 있는 반면 의원발의안에 대한 심사 절차가 소홀하다보니 의원입법이 정부제출안의 입법을 위한 우회수단으로서 악용된다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 의원입법은 특별히 규제도입·강화 성향이 현저하기 때문에 이러한 우려가 높다. 18대 국회를 대상으로 일정기간 발의·가결된 규제법안을 분석한 결과 정부제출안은 규제완화·폐지 성향이 높았으나, 의원발의안은 규제강화·도입 성향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의 경우 실질적으로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어 의원발의안 자체가 적거나 의원발의안의 가결률이 낮다. 독일과 일본은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과해야 하므로 의원발의안 수가 정부제출안 수보다 적다. 미국의 경우 법률안은 상·하원의 검토를 거쳐야 하며, 프랑스는 사안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사전심사를 받아야 하는 등 신중한 검토 절차가 마련돼 있기 때문에 의원발의안의 가결률이 현저히 낮다.
국회의원의 입법권은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헌법적 권한이지만 졸속 발의와 심사과정 부족으로 위헌법률의 양산과 규제의 과잉입법 문제가 국민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어 입법과정의 선진화를 위해 의원입법 심사과정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의원발의안에 대한 사전심사는 입법권에 대한 과잉 제한이 될 수 있으므로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고려할 수 있는 것이 의원입법에 대한 규제영향평가서의 첨부 의무화다. 현재 정부 재정이 수반되는 법률안에 대한 비용추계서 첨부 의무화를 적용하고 있는데, 이를 규제입법 사례에 적용하자는 제안이다.
제도 도입기에는 재정수반 법률안이 소요예산서를 첨부하는 건수가 적었으나 제도 정착과 더불어 점차 증가하게 된 사례를 볼 때 규제영향평가서를 첨부하도록 하는 규정만으로도 의원발의안 남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규제도입 가능성이 높은 의원입법 법안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으며,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과정을 회피하기 위한 정부제출안의 우회수단이 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