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이숭원 ‘미당과의 만남’(태학사)
입력 2014-01-14 01:34
거개의 시인들은 시를 처음 지면에 발표한 후 시집에 수록하면서 부분 수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한 편의 시에도 여러 이본(異本)이 존재하게 된다. 미당 서정주(1915∼2000)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미당 시 전집은 1972년 일지사와 1983년 민음사에서 각각 출간되어 두 판본이 존재한다. 그런데 일지사판 전집의 치명적인 결함은 원본 작품의 표기가 출판 당시의 정서법에 맞게 모두 교정되었다는 점이다. 민음사판 전집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초 시집의 표기를 최대한 살려 수록했음에도 불구, 조판 과정에서 몇 가지 오류가 발견된다. 예컨대 1941년 발행된 미당의 첫 시집 ‘화사집’에 수록된 시 ‘화사’엔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물어뜯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민음사판 전집엔 “원통히 물어뜯어.”로 되어 있다. 쉼표(,)가 마침표(.)로 찍혀 있는 것이다.
미당은 쉼표를 찍어 다음 연과 연속된 행을 만들자고 한 것인데 마침표를 찍은 것은 결정적인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점 하나의 차이로 시인의 의도가 뭉개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정본의 결정은 그만큼 중요하다.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미당의 초기작인 ‘문둥이’ ‘대낮’ ‘화사’에서부터 말년의 작품인 ‘낙락장송의 솔잎송이들’ ‘노처의 병상 옆에서’에 이르기까지 미당 대표 시 80편의 작품을 추려 편편마다 서지학적인 해설을 붙였다.
그가 저본으로 삼은 텍스트는 정음사판 ‘서정주 시선’(1956)과 시집 ‘팔할이 바람’(1988)을 참고한 것이다. 이는 미당이 이들 시집에 대해 “맞춤법은 내 원고에 충실했음을 밝혀둔다”라며 직접 교정을 보았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저서는 미당 시의 정본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정작 저자가 고민한 부분은 미당 시를 현대어로 바꿀 수 있는 수위를 결정해 일반 독자가 읽기 쉬운 형태의 판본을 제시하는 데 있다. 여기엔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겠지만 ‘시가 창작될 당시로 돌아가 미당과 대화하듯 텍스트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은 다른 저작과 차별된다고 할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