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론 이스라엘 전 총리 타계] 이스라엘선 “안보 영웅”… 팔레스타인선 “학살자”

입력 2014-01-13 02:46

영국 BBC방송은 11일(현지시간) 아리엘 샤론(85) 이스라엘 전 총리의 타계 소식을 전하며 그의 생애는 곧 이스라엘의 역사와 다름없다고 전했다. 1947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50년 가까이 역사적 고비마다 샤론 전 총리의 역할이 빠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2006년 1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혼수상태로 8년을 보냈고 중동 정치무대에 복귀하지 못한 채 주말 정오쯤 영면(永眠)에 들었다.

◇‘이스라엘 안보 영웅’ vs ‘학살자’=샤론 전 총리만큼 정치이력을 둘러싸고 논쟁적인 인물도 드물다. 이는 여전히 평화가 요원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세와 관련 깊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에선 안보 기틀을 확립한 영웅이지만 팔레스타인에선 대량학살을 저지른 철천지원수다.

영국 위임통치 시절인 1928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샤론 전 총리는 14세에 유대인 지하군사조직인 ‘하가나’에 들어가 73년 전역 때까지 이스라엘 장군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48년 1차 중동전쟁, 53년 요르단 공격, 67년 3차 중동전쟁 등 무수한 전투에 참가했다. 특히 3차 중동전쟁 때 동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를 점령하며 이스라엘 영토 확장에 기여했다. 인기를 등에 업고 73년 우파 정당인 리쿠드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진출했다. 당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눈에 띄어 국가안보특별보좌관을 지낸 후 농업·국방장관에 잇따라 발탁되며 승승장구했다.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 등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주도하는 그에게 이스라엘 국민은 ‘불도저’란 별명을 지어주며 열광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었다. 82년 레바논에 본부를 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향해 대규모 군사공격을 감행했고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사태를 촉발했다. 국제사회가 샤론 전 총리를 ‘학살자’라고 비난했고, 이 사건은 그의 이력에 큰 흠집을 낸 것으로 평가된다. 국방장관에서 사퇴한 이듬해인 84년 통상산업장관으로 다시 입각, 내각 요직을 섭렵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는 총리로 이스라엘을 이끌었다.

그는 권력의 정점인 총리가 돼서야 중동평화에 한 발 다가서려 했다. 2003년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에 땅을 돌려주기로 결단했다. 2005년 군 철수까지 단행했다. 팔레스타인에 강경한 리쿠드당을 나와 온건 정당인 카디마당을 창당, 중동평화 활동을 본격화하려던 때 쓰러진 뒤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엇갈린 애도…13일 국장=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그의 타계 직후 성명을 통해 “샤론은 위대한 전사”라며 “이스라엘은 그의 서거에 머리를 숙인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 국민에게 애도의 뜻을 전한다”며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흔들림 없는 약속과 양국 간 우정을 재확인한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이 장례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반면 팔레스타인 집권 파타당의 고위 간부 지브릴 라주브는 “샤론은 전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의 사망에 책임이 있는 범죄자”라며 “그가 법의 심판을 받기를 기대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인 하마스도 “팔레스타인에 재앙을 안겨준 범죄자”라며 “지옥에나 가라”고 저주했다. 레바논 남부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는 이날 샤론의 사망을 축하하는 총성이 들렸다고 독일 dpa통신이 전했다.

샤론 전 총리의 시신은 12일 예루살렘 의회로 옮겨졌고 저녁까지 시민들의 참배가 이어졌다. 장례식은 13일 전 세계 정치지도자가 참석한 가운데 국장으로 치러진다. 먼저 세상을 떠난 두 명의 부인 사이에 아들·딸 두 자녀가 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