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3월 3일 총파업”… 동네-병원醫 이해 엇갈려 가능성 낮아
입력 2014-01-13 03:44
동네 개원의사들이 중심이 된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원격의료 및 영리병원 허용 등에 반대하며 3월 3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정부는 “법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14년 만에 개원의사 중심의 의료계 집단행동이 임박해지면서 의료민영화 논란이 의·정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의협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이촌로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원격의료 및 영리병원 추진에 반대하고 왜곡된 건강보험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원한다”며 “대정부 협상에서 원만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3월 3일부터 총파업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의협은 앞서 11~12일 전국의사대표자 등 550여명이 모인 가운데 1박2일에 걸쳐 ‘2014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 의사 총파업 출정식’을 가졌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의 생명과 국민의 건강권을 볼모로 하는 파업과 진료 거부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며 “불법 파업과 진료 거부가 발생하면 국민건강권 보호를 위해 관련 법령에 따라 엄정 대처할 계획”이라고 경고했다. ‘엄정 대처’의 내용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업무개시 명령 및 행정처분, 형사처벌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파업 이뤄질까=14년 전 의약분업 당시에는 동네의사(개원의)부터 병원의사(봉직의)와 전공의들까지 진료 거부 사태가 단계를 밟아 확산돼 나갔다. 의약분업에 대한 의사들 내부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던 결과다. 반면 의협이 이번에 파업 명분으로 내건 ‘원격의료·영리 자회사 반대, 저수가 개선’의 세 가지 요구사항은 의협 내부에서도 목소리가 미묘하게 엇갈린다.
동네 개원의사들에게 원격의료는 시한폭탄인 반면 대형병원 의사들은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정책”으로 여긴다. 화상진료 등을 허용하는 원격의료가 현실화되면 ‘근거리’라는 동네의사들의 장점은 사라진다. 큰 병원 중심의 양극화는 심화되고 동네의원의 경영난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도 병원 소속 의사들에게는 ‘기회’로 여겨진다. 당장 이득은 크지 않더라도 의료법인의 수익구조가 개선되면 의사들 처우가 개선되는 부대 효과는 챙길 수 있다. 또 자회사를 통해 의료기기 및 의약품 개발에 참여하거나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길도 넓어진다.
현재 집단행동을 주도하고 있는 의협은 동네의사로 분류되는 ‘개원의’들이 주축이긴 하다. 하지만 회원 구성 비율을 보자면 협회 활동 의사 8만8000여명 중 개원의는 3만명에 조금 못 미치는 33% 정도로 의료기관에 취업한 봉직의(34%)보다 수적으로 열세다. 나머지는 수련 과정에 있는 전공의(15%)와 행정·연구직 의사들이다. 의협은 앞으로 한 달간 정부와 협상을 벌여 나온 결과물을 놓고 2주에 걸쳐 회원 의사들에게 파업 돌입에 대한 최종 의견을 물어볼 계획이다.
◇의사들의 요구는=의협이 파업 출정식 50여일 뒤인 3월 3일을 파업일로 잡은 이유를 두고 협상 가능성을 내다보는 분석도 많다. 배경에는 정부가 동네의사들과 병원의사들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수가’라는 단일한 당근책을 만지작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문 복지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수가 문제를 언급했다.
의협의 세 번째 요구사항은 ‘왜곡된 건강보험제도의 근본적 개혁’이다. 돌려 말했지만 현재 원가보다 낮게 책정된 의료수가를 인상해 달라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기본 진찰수가(올해 기준 1만3580원) 인상이 핵심이다. 수가는 건강보험이 의료서비스에 대해 지불하는 대가를 뜻한다. 원가보다 낮게 책정된 수가 때문에 건강보험의 통제를 받지 않는 각종 비급여가 팽창하고 이로 인해 환자 부담이 커졌다는 건 정부와 의사, 전문가, 시민단체 모두가 동의하는 유일한 지점이다.
의협은 “결국 수가 인상을 받아들이고 타협하지 않겠느냐”는 외부 시선에 발끈한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원격의료를 받아들이고 수가를 챙기라는 말들을 한다. 이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원격의료 및 영리병원 추진 등에 대한 의사들의 위기감은 2000년 의약분업 때보다 더 크다”고 밝혔다.
정부는 장·차관이 번갈아 기자회견을 해가며 ‘대화채널은 열어놓되 불법에는 대처하겠다’는 강경 메시지를 반복해서 발신 중이다. 현행 의료법에 따라 복지부 장관이나 시·도지사는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업무개시를 명령할 수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의료인은 ‘3년 이하 징역 혹은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이영미 황인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