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여름 힙합그룹 리쌍의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건물이 문제가 됐다. 리쌍 멤버 길과 개리가 50억원대 3층 건물을 샀는데 그 건물 1층에서 2010년부터 서윤수(37)씨가 막창집을 하고 있었다. 서씨는 이전 상인에게 권리금 2억7500만원을 주고 들어갔다. 새 ‘건물주’ 리쌍이 1층을 다른 용도로 쓰려고 나가 달라며 명도 소송을 내자 권리금을 날리게 된 서씨가 반발하며 이슈화됐다(리쌍은 명도 소송에서 이겼지만 서씨에게 지하 1층에서 계속 장사하도록 했다).
건물주 리쌍 vs 임차인 리쌍
반년이 흐른 지금 리쌍은 정반대 상황에 놓였다. 길과 개리는 2010년 8월부터 서울 강남역 부근의 건물 1층 점포를 월 650만원에 빌려 ‘팔자막창’을 운영 중이다. 이전 상인에게 지불한 권리금은 4억원쯤 된다. 그런데 건물주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재건축을 추진하고 나섰다. 건물에 10개 점포가 있는데 한 곳에는 이미 명도 소송이 제기됐다.
이대로 건물이 헐리면 ‘임차인’ 리쌍은 권리금 4억원을 받을 길이 없다. 환산보증금이 기준을 초과해 상가임대차보호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것까지 서씨와 똑같은 상황이다(다행히 건물주와 임차인들 간에 재건축 후 재입점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가로수길 건물과 강남역 건물에서 리쌍의 처지는 180도 뒤바뀐다. 건물주 리쌍은 권리금 폭탄의 스위치를 쥐었지만 임차인 리쌍은 그 폭탄 돌리기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서씨가 계속 장사하게 된 건 리쌍이 그래도 ‘괜찮은’ 건물주였기 때문이고 리쌍도 괜찮은 건물주를 만나 아직 희망이 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청 앞 중국집 ‘신신원’에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회원들이 찾아갔다. 집달관의 강제 명도 집행에 맞서고 있는 업주 신금수(53)씨를 응원하기 위해서다. 마침 건물주가 점포 앞을 지나다 이들과 마주쳤다. 짧은 언쟁이 벌어졌는데 건물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법대로 하고 있어. 지켜야지 법을!”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권강수 이사는 “임차상인들은 대부분 권리금을 주택 전세금처럼 생각한다. 이전 상인이 나한테 받아 나갔고 그 전 상인도 그랬으니 나도 그럴 거라 믿는다. 하지만 법에 임차인의 채권으로 규정된 전세금과 달리 권리금은 법이 모르는 돈이다. 임차인이 권리금을 받으려면 전적으로 건물주의 자비에 기대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가로수길은 누가 만들었나
왜 우리나라 임차상인들은 법 대신 자비에 의존해야 하는 걸까.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영두 교수는 “권리금은 유형의 건물 소유권과 무형의 영업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있다”며 “현행법이 건물 소유권을 100% 보장하고 상인들이 창출한 가치는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대표적 사례가 가로수길이다. 압구정 로데오거리가 잘나가던 2000년대 초반까지 가로수길은 그저 한적한 동네였다. 나지막한 주상복합건물과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여기에 독특한 인테리어의 카페와 이색 음식점이 하나둘 들어서며 입소문을 탔다. 로데오거리에선 느낄 수 없는 색다른 맛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젊은이들 사이에 가로수길 맛집 순례가 유행이 될 만큼, 외국인 관광객도 지도 들고 돌아다닐 만큼 상권이 발달하자 대형 프랜차이즈와 대기업 의류매장이 이 거리에 찾아왔다. 맘상모 회원 김남균(40)씨는 이후 벌어진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기업형 매장이 들어올 때는 통상 기존 임차인과 권리금 흥정을 하지 않아요. 바로 건물주를 만납니다. 지금보다 몇 배 높은 임대료를 제시하며 점포를 요구하면 건물주가 명도 소송을 내서 기존 상인들을 내보내는 거죠. 그러면 건물값이 껑충 뛰고 월세도 훨씬 많이 받으니까.”
그래서 생겨난 게 ‘세로수길’이다. 가로수길에서 밀려난 상인들이 인근 후미진 골목에 다시 하나둘 가게를 차리자 사람들은 이를 세로수길이라 불렀다. 가로수길이 그랬듯 상인들에 의해 새로운 상권이 하나 더 만들어지고 있다.
김 교수는 “가로수길이라는 상권을 만들어낸 건 상인들인데 건물값과 임대료 상승 등 그로 인한 이익을 우리 법은 모두 건물 소유자가 갖도록 했다. 상인들이 그 노력을 인정받는 유일한 방법인 권리금이 법제화돼 있지 않다”며 “건물을 소유한 사람과 건물의 가치를 높인 사람이 그 이익을 나누도록 패러다임을 바꾸는 논의가 이제는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태원준 차장, 이도경 박세환 기자 wjtae@kmib.co.kr
[법도 외면한 돈, 상가 권리금 해부] 건물주 리쌍 vs 임차인 리쌍…건물주 선처에 기댈 수밖에 없어
입력 2014-01-13 02:35 수정 2014-01-13 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