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회를 위하여-상가 권리금 해부] 자영업자 600만명… ‘권리금 폭탄 돌리기’ 끊어야

입력 2014-01-13 02:31

이하균(56)씨는 2011년 3월 부산 금정구 중앙대로의 주유소 건물 2층에 작은 골프연습장을 차렸다. 건물주와 보증금 2000만원, 월세 88만원에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전에 장사하던 상인에게는 점포를 넘겨받는 대가로 ‘권리금’ 9000만원을 지급했다.

사업을 하다 두 번 망한 가장(家長)의 세 번째 도전이었다. 전자부품회사에 다니다 2004년 회로기판 업체를 차렸는데 4년 만에 부도가 났다. 2008년 시작한 일본식 선술집은 채 3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를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 은행 빚을 낼 수도 없던 그에게 딸은 모아둔 결혼자금 5500만원을 내밀었다. 권리금과 보증금 1억1000만원을 맞추려고 친지에게 6000여만원을 더 빌려 뛰어든 장사다.

딸 시집갈 돈인데 설렁설렁할 아버지는 없다. 발품 팔아 홍보전단 돌리며 타석이 19개뿐인 연습장 회원을 70명까지 끌어올렸다. 잘될 때는 월 매출이 400만~500만원 됐다. 월세와 비용 빼면 200만원쯤 손에 쥔다. 그래도 고정 회원이 있어 자리는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6월 건물주에게서 명도 소장(訴狀)이 날아왔다. 2년 만에 점포를 빼라는 소송을 당한 것이다.

이유는 재건축이다. 대기업인 건물주는 이 건물을 새로 지으려 한다. 재건축 후 맥도날드 입점 얘기가 나오고 있다. 건물이 헐리면 이씨는 2년간 공들여 확보한 회원과 생업을 잃는다. 더 큰 문제는 권리금 9000만원. 다른 데서 장사를 계속할 밑천이자 딸 시집보낼 돈을 눈앞에서 날리게 됐다.

이씨는 예전 상인에게 권리금을 주고 이 점포에 들어왔고 다음 상인에게 받아 나가야 한다. 건물이 헐리면 다음 상인이 없으니 그가 돈 받을 데도 사라진다. 그는 “2년 만에 나갈 줄 알았으면 미쳤다고 권리금 9000만원씩 주고 들어왔겠느냐” “내 권리금은 어디서 받으란 거냐”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적어도 5년은 장사하게 돼 있지 않느냐”며 버티고 있다.

권리금은 이런 돈이다. 이씨의 권리금은 보증금의 4배가 넘는다. 통상 자영업 창업비용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보증금은 돌려받아도 권리금은 찾을 길이 없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권구백 대표는 “자영업자들이 ‘권리금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 전에 장사하던 상인은 운이 좋았다. 이씨에게 권리금을 받아 나갔고, 그 전 상인도 그랬다. 권리금은 이렇게 상인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다 어느 순간 건물이 팔리거나, 헐리거나, 건물주가 재계약을 거부하면 폭탄처럼 터져 없어지는 돈이며, 이번엔 마침 이씨 차례였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자영업자는 600만명에 육박한다. 경제활동인구 4.5명 중 1명꼴이다. 베이비붐 세대와 청년 실업자가 나란히 자영업에 뛰어들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상가임대차보호법 어느 조항에도 권리금 규정은 없다. 자영업을 할 때 가장 비중이 큰 돈을 우리 법은 보호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정부는 ‘창업 지원’이란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영두 교수는 “상인들이 투자해서 장사하며 창출하는 점포의 가치가 곧 권리금인데 법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가로수길이나 홍대 앞 같은 상권도 결국 상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가치다. 이런 노력을 어떻게 보호할지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일상적으로 거래되지만 법은 외면하는 돈을 어떻게든 찾아보려고 이씨는 지난 3일 서울에 올라와 건물주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특별취재팀=태원준 이도경 박세환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