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 우리도 뛴다] (5) 남녀 봅슬레이
입력 2014-01-13 01:34 수정 2014-01-13 02:53
아스팔트 달리던 썰매에 열정을 싣고…
한국 봅슬레이가 마침내 큰일을 냈다.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선수들이 3년 6개월 만에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전 종목 출전권을 획득했다.
파일럿 원윤종(29·경기연맹)과 석영진(24), 전정린(25·이상 강원도청), 서영우(23·성결대)로 구성된 4인승 남자 대표팀은 12일(한국시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끝난 2013∼2014 노스 아메리카컵 7차 대회 남자 4인승 경기에서 1·2차 레이스 합계 1분53초52로 1위에 올랐다. 4인승 종목에서 이 대회 1위에 오른 것은 출전 사상 처음이다. 원윤종-서영우, 김동현(27·서울연맹)-전정린으로 각각 구성된 남자 2인승 대표팀은 출전권 2장을 거머쥐었다. 여자대표팀 김선옥(서울연맹)-신미화(삼육대)도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 맞장구를 쳤다.
2010년 8월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스타트 연습장에서는 봅슬레이 대표선수 선발전과 강습회가 진행됐다. 밴쿠버올림픽의 진한 여운 때문인지 50여명의 도전자들이 몰렸다. 어린 학생부터 20대 청년까지, 탄탄한 근육질의 육상 선수부터 힘이 좋은 씨름 선수도 보였다. 그들의 모습은 호기심 반, 기대 반 좌충우돌이었다.
원윤종은 당시 입시체육을 치르고 체육학과에 입학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체고 출신 육상 선수였던 서영우는 합숙생활에 지쳐 운동을 그만두고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던 중 동기 따라 지원했다. 4인승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전정린도 밴쿠버올림픽에 출전했던 체대 선배 김동현의 권유로 봅슬레이를 시작했다.
성공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 이용(36) 국가대표팀 감독은 한국봅슬레이 대표팀이 상승세를 탈 즈음 ‘위험한 선택’을 감행했다. 지난해 1월 곧바로 최고 권위를 갖는 세계선수권대회를 노크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썰매가 전복돼 부상을 입기도 하고 성적이 하위권이다보니 감독과 선수 교체설까지 나왔다.
하지만 실패를 하더라도 더 넓은 세상을 보자는 게 이 감독의 생각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원윤종-전정린의 2인승 금메달이 그 직후인 지난해 3월 아메리카컵에서 나왔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해주는 값진 금메달이었다.
얼음 트랙이 없어 아스팔트 위를 달려야 했던 한국 봅슬레이는 이제 소치올림픽을 코 앞에 두고 있다. 선수들은 메달을 따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지만 이후가 더 걱정이다. 올림픽 이후 대표팀이 해산되면 선수들은 갈 곳이 없다. 학교로 돌아가거나 군입대, 또는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 한국에는 봅슬레이 선수가 몸담을 변변한 실업팀도 상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용 감독도 이 점을 가슴아파했다. “국가대표라는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올림픽에 첫 출전한 것이 98년 나가노올림픽이었지요. 그때와 비교해도 우리 썰매선수들의 상황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분명히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데 이 선수들에게 꿈과 희망만 이야기하며 또 4년을 함께 하자고 말할 수 있을지….”
선수들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한 달에 90만원 안팎의 국가대표 수당만으로 생활한지 꽤 오래됐다. 몇몇 남자 선수들은 군대 문제도 고민해야하는 상황이다. 겨울이 없는 자메이카 봅슬레이 대표팀의 동계올림픽 출전 실화를 그린 영화 ‘쿨러닝’의 기적을 태극전사들이 소치에서 보여줄지 주목된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