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시력 떨어진 ‘황혼 육아’ 기능성 용품으로 가뿐하게
입력 2014-01-13 01:33
“엄마 이게 괜찮겠죠?” 육아용품 매장을 찾은 직장맘 김주희(36)씨는 젖병부터 유모차까지 제품을 고를 때마다 함께 매장을 찾은 어머니의 뜻을 물었다. 어머니가 쓰기 편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이제 한 살이 된 딸이 어머니랑 있는 시간이 더 많다”면서 “어머니가 편히 쓸 수 있는 육아용품이 어떤 것인지가 구매의 주요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육아를 조부모에게 맡기는 가정이 늘고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 들어 시간제 일자리 등이 활성화되면서 친정 엄마에게 육아를 맡기는 여성들도 많아지고 있다. 육아용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12일 “노년층은 손주들을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고 가급적 좋은 육아용품을 사려고 한다”며 “육아용품 업계도 이런 실버세대를 잡기 위해 앞다퉈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조부모 육아 가구 250만 달해, 관련 용품 속속 출시=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식에 이어 손주까지 키우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2012년 말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약 510만 가구가 맞벌이였다. 그 중 절반 정도인 250만 가구는 육아를 조부모에게 맡기는 것으로 분석됐다. 맞벌이 가정의 영·유아(7세 이하) 두 명중 한 명이 할머니나 할아버지 손에 자라고 있는 것이다.
같은 해 9월 서울시가 발표한 ‘통계로 보는 서울노인의 삶’ 보고서에서도 12세 이하 아동 중 낮 시간 조부모가 일부라도 손주를 돌보는 비율은 전체 아동 중 13.2%(14만4000여명)나 됐다.
매년 2회 실시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임신·출산·육아용품 전시회인 ‘베페(BeFe) 베이비페어’에 방문하는 조부모 관람객의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열린 24회 전시회에도 50대 이상 관람객 비중이 전회(4.3%)보다 늘어난 5.0%였다.
이에 따라 육아용품 업계에서도 노년층의 육아 편의를 돕는 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특히 복잡한 육아용품을 다루기 쉽지 않은 조부모들을 위해 조작이 간편한 육아용품들이 부쩍 많이 출시되고 있다.
유모차의 경우 접고 펴는 동작이 간편한 반자동 기능이나 팔목 힘이 약한 노인들을 위한 부드러운 핸들링 등을 장착한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페도라 S7’은 한 손으로 버튼만 누르면 중력을 이용해 유모차를 쉽고 간편하게 접을 수 있는 이지폴딩 시스템을 도입했다.
‘잉글레시나 트릴로지 디럭스 유모차’도 허리를 굽히지 않은 채 앞바퀴를 잠그거나 해제할 수 있고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손잡이에 충격 분산 시스템을 적용했다.
시력이 떨어진 어르신들을 위해 용량이나 온도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제품도 나왔다. ‘MNW’에서 나온 이유식 냄비는 소량의 이유식도 양을 정확히 체크할 수 있도록 용량 눈금을 표기했다.
요미아시아는 버튼만 누르면 우유가 데워지는 젖병을 내놨다. 버튼을 누르면 모유 온도인 섭씨 32∼34도로 조절된다. 토미티피는 스마트 온도 센서를 내장한 젖병을 출시했다. 우유가 적정 온도보다 높으면 분홍색, 적정 온도면 파란색으로 표시된다.
아이를 목욕시키기 위해 쭈그려 앉았을 때 무릎 통증이 생기는 것을 방지해 주는 옥소토트의 ‘무릎 보호 매트’도 인기다.
손쉽게 이유식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제품도 있다. 필립스 ‘이유식 마스터’는 재료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본체에 담은 후 버튼만 누르면 스팀이 분출된다. 채소가 익은 후 갈기 버튼을 누르면 이유식이 완성된다.
◇육아 교실·관련 서적도 인기=지방자치단체도 조부모의 육아 노동을 돕고 있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청과 강남구청은 ‘손주 돌보미’ 사업을 시범적으로 시행했다. 맞벌이를 하는 자녀를 대신해 조부모가 손주를 돌볼 경우 구청에서 지원금을 주는 사업이다. 두 자녀 이상 둔 가정의 조부모가 25시간의 사전교육만 수료하면 손주 돌보미 자격을 얻게 된다. 시간당 6000원씩 최대 월 40시간, 24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서초구의 경우 평균 경쟁률이 3대 1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서초구의 성공에 강남구도 손주 돌보미 사업을 시작했다.
육아 강좌로 조부모 육아를 돕는 지자체도 있다. 부산은 지난달 조부모 육아 지침서를 제작, 부산지역 노인회관 등을 통해 황혼육아를 위한 교육을 실시했다. 서울 광진구청, 경기도 구리시 등에서도 시연 및 실습이 위주가 된 체계적인 조부모 육아교실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서점가에서도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육아 서적이 잘 팔려나가고 있다. 온라인서점 인터파크도서에서 발표한 60대 이상 베스트셀러 도서 순위를 보면 지난해 하반기 내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것은 육아 서적이었다. 특히 지난 해 11월에는 60대 이상 베스트셀러 10권 중 1, 2위를 포함해 총 3권이 육아 서적이었다.
‘할머니의 꽤 괜찮은 육아’, ‘하빠의 육아일기’, ‘할머니가 쓴 세 쌍둥이 육아일기’ 등 직접 손주를 기른 경험을 쓴 육아일기도 출간되고 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