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통일’이 오고 있다
입력 2014-01-13 01:34
“통일이 목전에 왔다고 공언한 적도 있다. 역량이 없으면 통일을 이뤄내지 못한다”
‘통일’이란 말이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독특한 표현까지 사용하며 통일이 우리 시대가 추진해야 할 최고의 과제임을 부각시켰다. 지난 정부 때 통일이란 말은 사어(死語)나 다름없었다. 천안함 폭침 사건에 따라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과 우리 국민의 방북을 불허한 2010년 5·24조치 발표 이후 통일이란 말은 사용하기에 불편한 용어였다. 이 말이 다시 등장한 것은 지난해 봄 한·미 정상회담 다음날 조간신문에서였다. 북핵 위협에 한·미 정상이 공동 대처키로 했다는 뉴스를 담은 2013년 5월 8일자 신문에 등장한 ‘통일’이란 단어를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 개성공단을 둘러싼 마찰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되면서 이 말은 잠시 시들해졌다가 지난 연말 북한의 장성택 처형 이후 다시 급박하게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북한이 지구촌의 질서와는 상반되는 방향으로 내부 체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국제관계에서 아귀가 맞지 않는 북한의 톱니는 소용돌이를 부를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내외의 시각이다.
이런 국면에서 주목되는 것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다. 우리의 그림이 어떻게 그려지는가에 따라 한반도의 통일 비전이 나오기 때문이다. ‘대박’이라고 제목 붙여진 시나리오가 적극적이고 치밀하게 짜이느냐 아니냐에 따라 기회가 올 경우 대박을 차지하는 나라가 한국일지 아니면 중국일지, 북한 주민의 선택은 어느 쪽일지의 여부가 가려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걸음마 단계를 지나 보다 구체적으로 작동돼야 할 시점임은 분명해 보인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북한에 대화와 압박의 두 가지 카드를 균형 있게 사용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남북 간 교류·협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자면 이 정책은 북한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한의 카드가 결정되는 수동적인 측면이 강하다. 북한과 중국의 컨소시엄으로 진행되는 개성 평양 신의주 간 철도 및 도로 건설 사업만 해도 그렇다. 세계 최고의 건설 기술을 가졌고, 500조원으로 추정되는 국내 대기업의 유휴자금이 있으면서도 이 공사에 남한이 참여하지 못한다면 우리 대북정책의 폭은 국제사회의 보폭보다는 훨씬 느리고 완고해서 앞으로도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남긴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올해 신년사에 ‘선군’ ‘주체’와 같은 이념적 단어가 줄고 ‘핵’ ‘건설’ 같은 구체적 단어가 늘었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젊은 김정은은 앞으로 핵을 지렛대 삼아 경제에 더욱 치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에 대해 ‘성공할 수 없는 방안’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취했지만 노골적인 반응보다는 입체적인 전략과 중후한 입이 더 지혜로운 수단이 아닐까 한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에 매장된 지하자원의 가치는 5조7500억 달러(약 6089조원)로 남한의 2397억 달러(약 253조)의 25배에 달한다고 한다. 근년에야 우리 정부와 학계에서 남북통일이 가져올 장점과 시너지 효과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바람직한 방향에서의 통일이 창출해낼 가치는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막대하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가치는 이념 대결에 가려 소홀히 여겨져 왔다. 통일에 대한 교육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북한 정권의 급작스러운 변화와 준비가 안 된 남한의 흡수통일론이다. 한국은 한반도 급변사태를 주도적으로 풀어갈 만큼 국제무대에서 역량을 갖추지 못했고, 가계 및 국가부채가 각각 1000조원에 이를 만큼 부강하지도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붕괴한다면 남한에도 치명적이기 십상이다. 지금 오고 있는 것은 통일을 향한 본질적인 기운은 아닌 것 같다. 적개심으로 가득 찬 대북 인식이 아니라 민족의 미래를 보는 탄력적인 시각이라야 통일의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편집인 s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