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혁상] 대박과 탈(脫)권위
입력 2014-01-13 01:33
과거 ‘대박’이라는 표현은 영화가 흥행에 크게 성공할 때나 노래가 큰 히트를 기록했을 때에 많이 사용됐다. 그런 표현이 몇 년 전부터 젊은층에서 뜻밖의 놀라움을 표현하는 용도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말을 갓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도 곧잘 따라하는 감탄사로까지 변용되고 있다.
‘대박’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우리말 어휘와 어원을 연구해온 충북대 조항범 교수는 저서 ‘그런 우리말은 없다’에서 몇 가지 설을 제시한다. 먼저 큰 배를 뜻하는 ‘대박(大舶)’ 파생설이 있다. 예전에 항구에 대형 어선이나 화물선 같은 큰 배가 들어오면 사람들은 그 물건을 팔아 큰돈을 벌 수 있었다. 배는 곧 재화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비유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박’은 또 노름에서 여러 번 패를 잡고 물주 노릇을 하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에 크다는 말이 더해져 횡재했다는 뜻으로 바뀌었다는 게 노름 용어 기원설이다. 또 하나 조선 후기 판소리계 소설 ‘흥부전’에서 대박이 유래됐다는 주장도 있다. 흥부가 큰 박을 탔더니 금은보화가 쏟아져나온 데서 유래됐고, 작은 박을 뜻하는 ‘쪽박’도 여기에서 파생됐다는 것이다.
사실 이 단어는 과거엔 점잖고 품위 있거나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이라면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각고의 노력으로 얻은 성과이자 결과물이 아니라 요행수로 큰돈을 벌었다는 뉘앙스가 은연중에 담겨 있어서다.
대통령의 말은 그 자체로 권위를 지닌다. 더욱이 신년 기자회견처럼 대내외적으로 국가의 정책과 전략을 설명하는 자리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호사가들 입방아에 자주 올랐던 것도 특유의 거친 화법이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린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취임 이후 줄곧 야권으로부터 권위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오던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다. 평소 정제된 표현만 써왔던 박 대통령 이미지에 비춰 파격으로 보였는지 이 말은 곧 세간에 화제가 됐다. 일각에서는 품위 없는 표현이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절대명제인 통일의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라면 그 표현의 품위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효율적인 국정을 위해 또 민족의 당면과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탈(脫)권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통령의 권위는 근엄한 표정과 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국정철학에 대한 국민의 공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남혁상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