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스와질란드 김종양 선교사] 첫 의과대학 한국인 손으로 세워
입력 2014-01-13 02:31
국민 40%가 에이즈 고통… 첫 의과대학 한국인 손으로 세워
이곳 스와질란드에 온 지 올해로 26년째가 됐다. 말라위에서 선교를 하다가 체류 연장이 어려워져 방황하던 1988년, 우리 부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탱가 선교센터에서 당시 10살이던 아들과 머물고 있었다.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던 중 스와질란드에서 온 가메제 목사님을 만나게 됐다. 가메제 목사님은 “복음과 교육만이 아프리카를 살릴 수 있다”고 하셨다. 기도와 고민 끝에 스와질란드에서 선교 사역을 하기로 결심했다.
스와질란드는 남아공과 모잠비크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다.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 비해 정치,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돼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전통과 문화를 가장 존중하며 왕과 각 지방의 추장들이 통치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스와질란드에는 시온교도들이 전체 인구의 65%다. 이들은 전통을 내세워 일부다처를 고집하고 있다. 때문에 성적으로 문란하고, 에이즈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120만명의 국민 중 약 40%가 에이즈 환자며 평균 수명은 32.6세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적지 않은 청년들이 에이즈로 생명을 잃었고 한 형제는 결혼 전 에이즈 보균자였던 아내를 만나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부부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현재도 몇몇 청년들이 에이즈에 걸려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다. 주일 설교마다 ‘죄와 에이즈’ ‘천국과 지옥’을 주제로 지속적으로 말씀을 전하면서 젊은이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고 있다.
이곳에서 중점을 쏟았던 사역은 과거 가메제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복음 전파와 교육이다. 우선 교육기관을 세워야 했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불러 3년간 교육시켜 세계를 변화시킨 것처럼 교육의 성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2002년 스와질란드에 사임기독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현재 750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2002년 모잠비크에 대조제일기독초등학교, 2009년에 소망중고등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2013년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스와질란드에 최초의 크리스천의과대학을 설립했다.
의과대학 설립의 시작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평화의료재단이 스와질란드의 고아네 지방에 병원을 세운 뒤 정부에 의사 파견을 요청했는데, 정부는 의사가 부족하다고 했다. 스와질란드 전체에 의사가 200여명뿐이다. 많은 학생들이 외국 의대로 국비 유학을 가기도 했지만 스와질란드로 돌아오는 학생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자체 의과대학은 당시만 해도 하나도 없었다.
평화의료재단 조기성 총재님과 논의 끝에 의과대학을 설립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이곳 청년들을 살릴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의료 전문인 선교사를 현지에서 양성해 아프리카 전역에 파송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 달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정부와 의대 설립 협약을 맺었는데, 정부에서 대학 부지와 운영비를 제공하고 선교회에서 건물을 건축하며 운영을 담당하기로 했다.
스와질란드 정부로부터 대학 부지를 제공받고, 2011년 시청에서 건축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학교 설립은 순조롭지 않았다. 정부가 설립 계약서에 ‘운영비를 지원하겠다’는 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정부의 후원을 받지 못하면 의대를 세워도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었다. 배신감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새벽기도 중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국회의원과 언론을 통해 정부를 설득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국회의원과 신문기자들을 건축 현장에 초청해 스와질란드에 왜 의과대학이 필요한지, 얼마나 큰 유익이 되는지를 설명했다. 국회의원과 기자들은 설명에 동의했다.
다음날부터 신문에는 스와지기독의과대학(SCU) 설립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정부는 운영비를 지원하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국회에서는 교육부 장관을 불러 운영비 지원 문구를 다시 삽입해 협약서를 새로 만들지 않으면 2013년 교육부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압력을 넣었다. 마침내 정부와의 협약서에 ‘앞으로 5년간 매년 운영비와 장학금을 스와지기독의과대학에 지원하며 5개의 국립병원을 의대 실습병원으로 사용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2012년 10월에 입학생 300명을 모집한다는 신문 광고를 냈는데 1000명이 응시했다. 350명을 선발해 2013년 3월 약학, 간호학, 방사선, 임상병리, 정신의학과를 개설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이 입학하던 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눈을 빤짝이며 기뻐하는 얼굴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바로 다음날 시련이 찾아왔다. 교육부 장관이 학교 문을 닫고 외국의 의과대학으로부터 학위인증서를 받아오라고 통보해 왔다. 참담하고 실망된 마음으로 남아공 프리토리아 의대 등 몇 군데에 연락해 알아보니 다른 대학에서 SCU 의대의 학위를 인증하는 것이 아니라 스와지 정부에서 해 주는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프리토리아 의대 교수들과 함께 아프리카 최고 대학인 남아공 케이프타운대 부총장을 역임하고 트랜스카이 지역과 가나에 의대를 설립한 덴 교수라는 분을 초청했다. 그분께 스와지의과대학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부총장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스와지기독대학교를 설립하는 일에 동참하겠다고 쾌히 승낙했다. 덴 교수는 남아공 대학과 양해각서(MOU)를 맺는 데 앞장섰다. 학위인증서 대신 양해각서(MOU)를 내세워 정부의 허가를 받았다. 2013년 8월 마침내 5개 학과를 개설했다. 올해 8월에는 의대, 정통대, 예술대, 신학대를 개설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적재적소에 필요한 사람을 붙여주셨다. 스와지기독대학교에는 10명의 교수가 있다. 한국인도 있다. 간호학과의 남영주 교수다. 그는 미국 예일대 간호학 석사, 워싱턴주립대 간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남 교수는 2007년 부르키나파소에서 열악한 의료 현실을 목격한 뒤 아프리카에서 간호 교육을 하겠다는 목표를 갖게 됐다. 스와질란드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의사 대신 간호사가 1차 진료를 거의 담당하고 있어 간호사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 남 교수는 한국에 연로하신 어머니가 계셔서 고민했지만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여기가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 여기고 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국 최초의 의과대학인 연세대학교를 미국 기독교인들과 선교사들을 통해 세우신 것같이 스와질란드 최초의 의과대학은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선교사를 통해 설립하셨다.
학교와 교회 건물의 이름은 대부분 건축을 후원한 후원교회 이름이나 개인 후원자들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 이름들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현판에 영어와 한글로 건축일자와 건축자의 이름을 기록했다. 학교 이름은 사임기독중고등학교, 대조제일기독초등학교, 소망기독중고등학교, 성원기독초등학교, 창대기독중학교 등 모두가 한국 이름을 붙였다.
기독대학도 공동 설립자들의 명단을 동판에 기록할 예정이다. 스와질란드 최초의 의과대학인 이곳은 정부가 운영을, 선교회는 건축을 담당한다. 강의실을 건축하는 공동 설립자들의 이름은 현판에 새겨서 강의실 입구에 부착하려고 한다. 앞으로 30칸의 강의실을 건축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다. 강의실 한 칸의 건축비는 2500만원이 필요하다. 이 일에 동참하는 동역자가 많이 생기도록 기도를 부탁드린다.
스와질란드 김종양 선교사
◇김종양 선교사=△1946년 전북 출생 △1985년 독일 베뢰아 신학교와 영국 웨일스 신학대학 졸업 △1985년 10월 병원선교회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세계선교회에서 파송받아 말라위 사역 시작 △1986년에 아프리카대륙선교회를 설립해 말라위 스와질란드 등 중남부 아프리카 7개국에 교회 고아원 병원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신학교 선교농장 기도원 기독의과대학 설립 △1987년 미국 남침례교단으로부터 목사 안수 받고 1988년 6월 선교지를 스와질란드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