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손병호] 시급 5310원

입력 2014-01-13 01:35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복합쇼핑몰의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20대 초반 점원은 자신의 시급을 10원 단위까지 정확히 말했다. 5310원이라고 했다.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 5210원보다 100원이 더 많았다. 얼마나 벌었는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일한 시간을 곱해보기 때문에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점원은 자신은 아르바이트로 하는 일이지만 고교 졸업 후 성인이 돼서 일찍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형들은 시급을 더 받아 월 120만원 정도는 번다고 전했다.

근처 다른 패스트푸드점의 한 20대 초반 여성은 “올해부터 올라서 한 시간에 5300∼5400원을 받는다고 들었는데 아직 1월달 페이(Pay)를 못 받아봤다”고 말했다.

한 일본계 패스트패션 매장에서 만난 20대 중반 점원은 이곳의 경우 월급제와 시급제가 따로 있는데 시급제 친구들은 5500원을 받고, 자신은 월급제인데 액수는 비밀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국내 대기업 패스트패션 매장에서 월급제로 봉급을 받는 청년은 자신은 주말 근무까지 포함하면 140만원 정도 받는다고 소개했다.

인근 유명 커피 체인점의 점원은 “시급요? 저희도 오천 몇 백원 받아요. 다들 비슷해요”라고 말한 뒤 붐비는 계산대 앞으로 돌아갔다. 이날 다녀본 대부분의 매장에서 점원들은 시급이 5500원 안팎이라고 말했다.

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못 줘도 이 정도는 주게끔 강제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한마디로 ‘최저 기준’인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최저임금은 최저 기준이 아니었다. 사실상 평균임금이었다. 워낙에 다들 비슷해 상한(上限) 가이드라인으로도 비쳤다. 최저임금에 200∼300원 더 얹어 주거나 극히 일부 더 많이 주는 케이스도 있지만 시급제 및 시급제를 준용한 월급제 체제에서는 정부의 최저임금은 최저가 아닌 ‘표준 임금’으로 탄탄히 자리매김해 있는 상황이었다.

좋은 일자리가 좀체 늘지 않고 있다. 특히 성인이 돼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고졸 청년들, 어렵게 생활비를 버는 대학생들, 생활전선에 뛰어든 주부 등이 일할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착한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소박하게나마 삶을 꾸려가려는 이들이 시급제 일자리로 몰리고 있지만, 현재의 시급은 계속 ‘착한 길’에 잡아두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시급이 너무 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과 대기업 계열 체인점들이 그러한데 하물며 다른 체인점이나 지방 도시의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새해 들어 최저임금을 기존 7.25달러에서 10.10달러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업체에는 당장 부담이어도 소득 불균형 해소와 내수회복 및 성장률 증가 등을 감안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얻는 게 더 많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급이 인상되면 500만명이 빈곤에서 탈출할 것으로 기대됐다.

우리도 최저임금 또는 시급을 높이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작은 식당들이나 중소 배달업체, 소규모 기업까지야 당장 그렇게 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대기업 또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고용한 시급제 일자리부터라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그런 기업에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그게 그 어떤 복지나 사회공헌보다 더 나을 수 있다.

그날 숱한 매장을 돌고 나서 계속 맴도는 생각이 있다. 우리가 젊은이들을 집단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손병호 산업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