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우선덕] 전단지가 있는 풍경

입력 2014-01-13 01:35


다른 많은 직업도 그렇겠지만 전단지 나눠주는 이들도 삭풍 이는 겨울이라고 따로 쉬지는 않을 터이다. 전단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전단’이라는 낱말만 이렇게 풀어 놓았다. 전단(傳單): 「명사」 선전이나 광고 또는 선동하는 글이 담긴 종이쪽. ‘알림 쪽지’로 순화.

전단지 붙이는 분들은 유독 부지런한 것 같다. 밤에 분명히 떼어냈는데 새벽 미명에도 다가구주택인 우리 집의 벽이며 문짝이 광고 전단지로 어느새 덕지덕지하다. 집 안팎뿐 아니라 바깥 어디를 오가거나 출퇴근길에 사람이 나누어주는 전단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헬스장, 음식점, 임플란트, 학원, 슈퍼마켓, 의류 할인매장, 벚꽃관광, 무박 백두대간 등 종류도 다양하다.

10여년 전, 큰애가 생애 첫 아르바이트로 전단지 나눠주는 일을 받았다. 18세가 넘으면 자립한다는 선진외국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아이도 귀가 있어 들었겠지. 고등학교 졸업식 바로 뒤니 별 능력이 있을 리 없어 감지덕지한 전단지 일거리였다.

북풍 휘몰아치는, 하필 그해 가장 춥다는 날이었다. 그토록 잘 싸맸는데도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온 아이는 일대변신이 되어 왔다. 어린 노숙자가 시퍼렇게 얼어 앞에 있었다. 희게 곱던 뺨이 하루 사이에 시뻘겋게 트고 눈가 잔주름이 자글자글, 콧물도 줄줄 흘렀다.

“아 정말 두 번은 못 하겠다! 아 정말 사람들 전단지 너무 안 받더라. 전단지가 다 없어져야 일이 끝나는데 줄지를 않아, 줄지를. 사람들 아 정말 야속하더라, 아 정말 울고 싶더라. 그까짓 것 좀 받아주면 안 되나? 나는 앞으로 어떤 전단지든 누가 나눠주든 무조건 다 받아줄 거야. 아 정말 내가 해보니 심정을 알겠더라!”

아이는 ‘아 정말’ 소리를 수없이 하며 소중한 하루 경험을 거듭 피력하였다. 비록 한 번이지만 아이 덕분에 알았다. 저분이 저 전단지를 다 없애야 일한 값을 받겠구나 싶어 예사롭지 않다. 소일 삼아 하는 이도 있겠지만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도 있으리라. 전단지를 받는다고 그 물건을 사거나 그 장소를 꼭 이용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광고 전단지는 미미하나마 정보와 재활용 폐지도 되고 말이다. 어떤 종류든 다 받겠다는 자세로 오늘도 갖가지 전단지를 기꺼이 받는다. 그렇건만 여태 못 받아본 명함 크기의 어떤 전단들도 있다. 손 내밀어도 결코 주지 않는, ‘미즉인시출파장견(미인 즉시 출장 파견)’ 종류.

우선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