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회를 위하여-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 (2) 무너진 가정 보듬지 못하는 학교

입력 2014-01-13 01:33


방황하는 ‘잉여 4인방’ 동행 취재기

오후 4시, PC방 모여 하루 시작 “아침까지 놀아요”


학교에서 밀려난 아이들은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지난해 12월 27일 서울의 자퇴생 4명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일상을 관찰했다. 4인방의 하루는 학교로부터 탈락한 아이들이 맞닥뜨린 무기력하고 희망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학생도, 직장인도, 어린이도 아닌 이들은 마치 사회가 버린 ‘불량품’처럼 거리를 뒹굴며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또래 학생들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이들이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기 전에 건져 올릴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삶

상수(이하 가명·18)는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눈을 뜬 뒤 제일 먼저 빈속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얼굴은 전날 새벽까지 피워댄 줄담배로 누렇게 떠 있었다. 누룽지처럼 굳은 밥을 국에 대충 말아 먹으며 휴대전화 메신저에 저장된 ‘병신○○’과 ‘미친○○’에게 말을 걸었다. “나와라.” 회합 장소는 그냥 ‘거기’였다. 동네 재래시장 복판에 위치한 지하 PC방은 학교를 그만둔 상수네 패거리의 일과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오후 4시. 한밤처럼 컴컴한 PC방에서는 태진이가 축구 게임에 몰두해 있었다. 잠시 후 경민이도 도착했다. 치킨 배달 아르바이트 중인 정우를 빼고 ‘중학교 동창 4인방’이 다 모였다. 총싸움 게임이 시작됐다. “(PC방) 사장이 안 건드리면 아침까지 여기서 놀아요.” 뭐하고 시간을 보내는지 묻자 상수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들을 처음 인터뷰했던 지난해 9월, 경민이는 술 먹고 오토바이 타다가 다쳐 왼다리에 목발을 짚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 사정도 비슷했다. 무릎과 허벅지, 팔꿈치에는 오토바이를 타다 생긴 크고 작은 상처가 수두룩했다. 한때는 오토바이 폭주로 시간을 보내고 공원에서 술 마시며 날을 새우던 아이들은 겨울이 오면서 동면하듯 PC방에 모여 시간을 때웠다.

경민이가 말했다. “추워지기 전에 오토바이 팔아서 그 돈으로 노래방 다니고 술 마시고 신나게 썼어요. 요즘에는 추워서 게임만 해요.”

학교 나온 뒤 동네 불량배로

게임이 지겨워지면 4인방은 담배를 물고 동네를 어슬렁댔다. 요즘에는 인근 고교생 성민이를 괴롭히는 게 일과가 됐다. 이유는 “그냥 심심해서”라고 했다. 나중에서야 한 아이가 속내를 드러냈다. “멍청한 게 학교를 다녀요. 꼴 보기 싫게.”

또 다른 인터뷰 자리에서 피해자 성민이를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부모 없는 조손가정 출신인 데다 말투가 살짝 어눌해 타깃이 된 듯했다. 4인방에 대해 물었다. 성민이는 “원래 못되게 굴긴 했는데 학교에 안 다니면서 괴롭힘이 훨씬 심해졌어요. 얼마 전에는 휴대전화와 지갑을 뺏겼고…”라며 울먹였다.

“(자퇴하고)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어요. 같은 동네이다 보니 돌아다니면 자주 마주쳐요. 그래서 제가 집에서도 잘 안 나와요. 걔들 무서워서. 할머니에게는 말해도 소용없고.” 성민이는 이사를 가고 싶지만 할머니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출이라도 해버릴까 고민 중이다.

거리에서 만난 한 여고생도 4인방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학교도 안 가고 어슬렁대면서 애들 괴롭히는 그 건달들 말이에요? 경찰이 왜 안 잡아가나 모르겠어요.”

무너진 가정, 꿈이 깨진 아이들

4인방이 종일 PC방에 붙어사는 동네 불량배가 된 건 지난해 봄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은 그 무렵 차례로 학교를 관뒀다. 공부를 잘했던 건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꿈조차 없었던 건 아니었다. 자동차 정비와 요리를 좋아하는 상수는 자신의 이름으로 자동차 정비소나 식당을 운영하고 싶었다. 정우는 축구선수를 꿈꿨다. 꿈이 깨진 뒤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엇나가기 시작했다.

정우는 축구부가 없는 학교에 흥미를 잃었다. 전학가려 했지만 “운동시킬 형편이 안 된다”는 부모님 대답이 돌아왔다. 아버지의 구타로 중학교 이후 가출과 귀가를 반복했던 상수에게는 학교나 꿈보다 생존이 급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은 학습부진아 경민이에게는 수업이 고통이었다. 지병으로 누운 어머니도, ‘행불’인 아버지도 공부가 버거운 경민이를 챙기지 못했다.

경민이는 자신이 체벌 받는 장면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고 있었다. 경민이가 간직한 학교에 대한 가장 생생한 기억이자 기록이었다. 동영상 속에서는 건장한 남자 교사가 교탁을 두 손으로 붙잡고 있는 학생의 엉덩이를 몽둥이로 내려치고 있었다. 경민이는 자퇴할 때 인터넷에 올리려고 찍었는데 ‘귀찮아서’ 안 올렸다고 했다.

각기 다른 이유로 학교를 못 견뎌했던 네 아이. 하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엇비슷했다. 그중 셋은 자퇴할 때 담임교사로부터 ‘부모님 모시고 와서 자퇴서 써라’는 말만 들었다. 설득은 없었다.

딱 한 명 상수만 다른 말을 했다. 아버지에게 자주 맞았던 상수의 사연을 알고 있던 상담교사는 상수를 말렸다.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에게) 혼나니까 우리 집에서 먹고 자면서 학교는 꼭 다니자”고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교사의 설득은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17년 인생에서 자신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 단 한 명의 어른을 상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특별취재팀=이영미 정승훈 차장, 이도경 김수현 정부경 황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