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임만호 (14) 홍정길 목사 “만호, 교회 개척에 동참해주게”
입력 2014-01-13 01:32
미림목재에 근무하던 1969년부터 서울 상도제일교회에 출석했다. 신앙생활 중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가 된 홍정길 목사님으로부터 1975년 여름 전화가 왔다. 홍 목사님은 나보다 나이가 두 살 아래였지만 같은 고향 출신인 데다 동급생이어서 사적인 자리에선 반말을 쓸 정도로 허물이 없는 친구사이였다. 그는 나를 한국대학생선교회(CCC)로 이끌어준 은인이었다.
“만호야, 내가 이번에 반포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했어. 교회 이름도 반포제일교회로 정했어. 20여 가정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어.” “그래? 마침 나도 교회 개척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 “그러면 우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함께 세우는 게 어때?”
그렇게 75년 중반부터 반포제일교회(현 남서울교회) 개척예배에 참석하게 됐다. 하지만 상도제일교회에서 맡은 직분이 있었기 때문에 3개월간 낮에는 상도제일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밤에는 개척교회 모임에 참석했다. 상도제일교회에서 맡았던 일을 마치고 백병건 담임목사님을 찾아갔다.
“함평 고향교회의 죽마고우가 이번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제가 옆에서 도와줘야 할 것 같습니다.” “임 집사님, 교회 개척을 돕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백 목사님이 흔쾌히 허락을 해주셔서 홍 목사님을 옆에서 돕게 됐다.
그렇게 76년 1월부터 온 가족이 반포제일교회로 출석했다. 집도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반포동 아파트로 옮겼다. 반포제일교회가 남서울교회를 거쳐 남서울은혜교회가 되기까지 40여년 동안 병원에 입원하는 등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세 차례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교회를 비운 일이 없다.
78년 장로 피택을 받아 이듬해 79년 장로 장립을 했다. 새벽예배 후 교회를 둘러보고 퇴근 때도 교회를 방문했다. 조석으로 교회를 살피는 게 장로의 본분이자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은 홍 목사님의 부친인 홍순호 장로님이 보여주신 삶 때문이었다.
홍 장로님 내외분은 항상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다니셨다. 고교 재학시절 새벽기도를 가면 두 분은 새벽 4시 전에 도착하셨다. 구체적 기도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매일 한 시간 이상 무릎을 꿇고 9명의 자녀와 300여명의 고아를 위해 간구하셨다. 두 분이 교회 선임 장로로서 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홍 장로님은 주일이면 모든 사업체를 완전 휴업했다. 타지로 출장을 가셨어도 주일이면 언제나 본 교회에 돌아오셔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됐다. 주일 새벽예배부터 저녁예배까지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으셨다.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 헌금 때면 9명의 자녀들과 부부, 그리고 장로님 댁에서 같이 생활하는 점원 2명까지 포함해 맥추감사절 보리 13가마와 추수감사절 쌀 13가마를 빠지지 않고 헌금했다.
홍 장로님은 먼 거리의 타지를 다녀오실 때도 매일 저녁 교회를 방문하셨다. 버스 정류장이 장로님 댁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집에 들르지 않고 3㎞가 넘는 거리의 교회에 먼저 가셔서 기도하셨다. 그리고 교회를 둘러보면서 사찰집사님에게 교회에 무슨 일이 없었는지 물어보셨다. 그 다음 목사님 사택을 방문해 인사드리고 자기 집에 가시는 모습을 봤다. 이 모습을 본 나는 ‘장로는 항상 어디를 다녀와도 교회 먼저 둘러보고 집에 가는 게 순서’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