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병·깡통 모아 동네 장학회에 5년째 기부한 허남연씨 “소통엔 봉사가 최고”

입력 2014-01-11 01:36

매일 새벽 3시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로에 사는 허남연(59)씨는 ‘제기동 1호’라고 이름 붙인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며 폐품을 줍는다. 골목을 샅샅이 훑어 모은 결과는 하루 평균 깡통 5㎏, 빈병 20여개. 이걸 팔아 손에 넣는 돈은 5000원 남짓. 수익금은 인근 노인정과 보육원, 주민들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제기동 장학회’에 전달한다. 5년간 그가 기부한 금액은 1000만원에 이른다.

봉사는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다 깡통을 밟고 넘어질 뻔했는데 그 순간 ‘폐품을 주워 좋은 일에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씨는 10일 “50년 가까이 이곳에 살았지만 퇴직 후 동네를 돌아다니니 나를 외지인인 줄 알고 서먹해하더라”며 “이들과 소통하는 데 봉사활동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의 지하 사무실은 맥가이버의 ‘비밀창고’를 방불케 한다. 빈병과 깡통은 물론 선풍기·스피커·의자·책상·우산 등 폐품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2009년 한전에서 퇴직한 전기 기술자인 허씨는 소일거리 삼아 이웃 물건을 한두 개씩 고쳐주다 이제는 전자제품 수리를 도맡고 있다. 이곳은 그가 회장을 맡은 새마을지도자제기동협의회 사무실이기도 하다.

폐품으로 꽉 차 있는 사무실이지만 폐지는 없다. 그 이유에 대해 허씨는 “할머니들이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데 나까지 그걸 주워가면 안 된다”며 정색했다. 그는 요즘 버려진 우산을 고쳐 노인정과 장애인 시설에 전달하는 일도 한다. 허씨는 “몸으로 뛰는 봉사를 하고 싶다”며 “어르신들이 ‘허 회장, 쉬었다 가라’고 말을 건넬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