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깨져야 산다
입력 2014-01-11 01:31
고린도후서 4장 7∼11절
일반적으로 귀한 것은 깨지기 쉬운 곳에 담지 않고, 깨지지 않는 곳에 담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바울은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깨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질그릇이 깨져야 그 안에 들어 있는 보배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삶을 질그릇 속에 담았습니다.
바울은 우겨쌈을 당하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는 곳, 박해를 당하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죽음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곳에 들어가야 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겨쌈을 당할 줄 알았는데 싸이지 않았습니다. 망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자리까지 들어갔으나 죽지 않고 예수님의 생명을 경험했습니다. 깨져 약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해졌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친 풍랑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뜨거운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한겨울 찬바람을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당당히 맞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만났습니다.
진짜는 연구실이 아닌 현장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현장이 없는 신앙은 병든 신앙이고 죽은 신앙입니다. 왜 한국교회가 이렇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간단합니다. 신앙의 현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신앙을 교회에서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에서 예배하고, 교회에서 찬양하고,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끝냅니다. 삶에서 드리는 예배가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삶에서 나오는 찬양이 없습니다. 삶에서 터지는 기도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앙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삶으로 고백하는 현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깨지는 것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해지는 것, 진정으로 사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깨지노라.’ 이것이 바울의 자랑이었습니다. 깨지는 것이 무슨 자랑이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자랑인 이유는 내가 죽으면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내가 깨지면 예수님의 승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죽는 것이 자랑이고, 깨지는 것이 자랑입니다.
깨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깨지는 것과 진리 때문에 깨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진리를 위한 깨짐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진리를 위해 깨지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기를 원합니다. 반면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위해 깨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능력이 나타나고 생명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위해 깨지지 않는, 고난 없는 삶을 자랑하지 맙시다. 우리는 진리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을 자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014년 살아 있는 영성을 간증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복음 안에서 많이 깨지는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연택 목사 (대구제일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