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청와대 대변인
입력 2014-01-11 01:33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여성 공무원 중에 똑똑한 사람 하나 골라 청와대 부대변인을 시켜 보라”고 비서실에 지시했다. 대통령 동정을 전하는 TV뉴스에 매일같이 남성 대변인이 나오니까 너무 딱딱하다는 게 이유였다. 청와대 비서실이 주목한 사람은 여성 최초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전재희 노동부 직업훈련국장. 그러나 경상도 억양이 너무 세 TV에 맞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전 국장은 청와대 근무가 무산됐으나 대신 승진과 함께 경기도 광명시장에 발탁됐고, 이후 3선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여성으로서 ‘대통령의 입’에 처음 기용된 이는 김대중정부 때(2002년)의 박선숙 대변인. 공보수석을 겸한 차관급이었다. 노무현정부 들어서는 차관급인 홍보수석과 휘하 1급인 대변인으로 분리됐다. 대언론 브리핑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노무현정부의 송경희, 이명박정부의 김희정, 박근혜정부의 김행 등 여성 대변인이 맥을 이었다. 이처럼 여성 대변인이 계속 기용된 것은 TV 시대 이미지 정치의 산물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수석과 대변인을 분리한 현행 제도가 바람직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전하는 앵무새여서는 안 된다. 고도의 정무적 판단과 대통령 및 정부 홍보 전략에 따라 언론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적 홍보에 능하고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한 중량급 인사에게 수석과 대변인 기능을 함께 맡기는 것이 좋겠다. 그간 수석과 대변인의 불협화음이 끊임없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통령 대변인’은 ‘성북동 비둘기’를 쓴 시인 김광섭이다. 정부 수립 후 5년간 이승만 대통령을 모신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명언을 남겼다. 박정희정부 때의 김성진과 임방현은 약 4년씩 대과 없이 직무를 수행해 명대변인으로 꼽힌다.
박근혜정부의 윤창중 대변인은 성 추문으로 오래전 낙마했고, 김행 대변인마저 분명치 않은 이유로 지난달 31일 청와대를 떠났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자랑스러운 불통’ 발언으로 구설에 올라 있다. 청와대 대변인 체제가 굳건해야 대통령과 나라가 편할 텐데….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