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노용택] 에어콘 수리기사들의 짠한 뒷모습

입력 2014-01-11 03:37


지난해 4월 이사를 하면서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여러 가전제품을 구입했다. 가전제품들은 이사 당일 새 집으로 배달받기로 했는데 에어컨이 말썽이었다. 가게 실수로 주문이 잘못돼 이사 1주일 후 토요일에야 배달이 가능했던 것이다. 살짝 황당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다시 배달받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약속한 날 아무리 기다려도 설치 기사에게 연락이 없었다. 마침 오전 중 중요한 볼일도 있었지만 이를 미룬 채 연락을 기다리던 터라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시 본사에 확인해 보니 이번에는 설치 예약이 누락돼 순서가 뒤로 밀렸고, 우리 집은 당일 오후 늦어서야 에어컨 설치가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그날 아무 일도 못한 채 집에 있어야 했고 밤늦어서야 에어컨 설치가 끝났다.

에어컨의 저주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7월이 돼 날씨가 더워지자 에어컨을 처음 가동했는데, 웬걸 시원한 바람은커녕 더운 바람만 나왔다. 점검을 나온 정비기사는 에어컨 실외기에서 가스가 새어나갔다며 가스를 채워줬다. 그러나 수리가 끝난 뒤 에어컨을 작동시켜도 금방 시원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수리를 받은 지 1주일쯤 지난 7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더위가 절정에 달했던 날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잘 나오지 않는 에어컨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에어컨 제조회사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당장 조치를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곧바로 수리기사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현재 밀린 일이 많아서 밤 9시에야 방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며 매우 미안해했다. 나는 “더워 죽겠는데 가능하면 빨리 오라”고 닦달했다. 그리고 밤 8시30분쯤 되자 현관 벨이 울렸다. 각종 검사 장비를 안고 2명의 정비기사가 집에 들어섰다. 그들은 한눈에 봐도 너무나 지쳐 보였다.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일을 했는지 온 몸은 먼지와 땀에 절어 있었고, 시큼한 땀 냄새가 진동했다. 두 사람은 이후 약 1시간 넘게 실외기가 설치된 베란다에서 뜨거운 바람을 토해놓는 실외기에 각종 검사 장비를 연결한 채 고장 여부를 체크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당초 에어컨에 대한 짜증으로 화가 나 있던 나와 아내는 점점 수리기사들과의 불편한 동거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베란다에서 땀 흘리고 있을 때 거실에 앉아있는 것도 민망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토요일 밤에 이들은 불만에 가득한 사람을 상대하며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고, 나도 원인제공자 중 하나였다. 에어컨 점검은 밤 10시 가까이 돼서야 끝났고, 미안했던 우리는 시원한 보리차를 대접하며 고맙다고 했다. 에어컨 문제로 생긴 짜증과 분노는 이미 사라졌다.

수리를 마치고 떠나는 그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죄송했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멋쩍어진 내가 “이제 퇴근하시는거냐”고 묻자 그들은 희미하게 웃으며 “아직 몇 군데 더 들를 곳이 있다”고 답했다. 주말 심야시간까지 일에 저당잡힌 저 사람들의 인생은 얼마나 불행할까. 수리기사들이 떠난 뒤에도 집안에 남은 그들의 땀 냄새와 노동의 흔적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삼성전자서비스 천안두정센터에서 일하며 노동조합 설립에 앞장섰던 최종범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최씨의 죽음을 통해 나는 비로소 서비스 기사들의 실상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지난여름 밤늦게 우리 집을 방문했던 에어컨 수리기사들에게 느껴졌던 삶의 무게와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절감했다.

최씨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하루에도 14시간씩 점심식사도 거르며 주말도 없이 일했고, 고객이 원하면 자정까지도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여름 성수기에 월 400시간씩 일해도 비수기 9개월은 카드 대출로 연명해야 하는 처지였다고 한다. 이후 최씨의 유가족들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는 모습도 지켜봤다. 영하 10도가 넘는 12월의 강추위 속에 도로에 앉아 있던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자꾸만 지난여름 에어컨 수리기사의 뒷모습이 겹쳤다. 그들이 남기고 간 시큼한 땀 냄새와 희미한 미소도 계속 떠올랐다.

최씨의 죽음 이후 유족들과의 교섭을 거부하던 삼성전자는 다행히 지난 연말 유족과 전 노동자에게 사과하고 노조활동을 보장하기로 했다. 또 협력사에 속한 수리기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도 발표했다. 그러나 최씨의 아픔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무기계약직이 되면 툭하면 파업을 할 것”이라는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의 발언으로 주목받았던 국회 청소노동자들은 지난해 말 결국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새해 들어서는 한국수자원공사 도급업체 소속 노동자 10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임신 중에 구청에서 해고된 비정규직도 있다. 새해에는 박근혜정부가 약속한 국민행복 시대가 언제 잘릴지 모를 불안과 극한 노동환경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활짝 열리길 소망해 본다.

노용택 산업부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