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민영화 논란 어디로… 정부 ‘수가 인상’ 문제 공개 거론, 비급여 부문 미적미적
입력 2014-01-10 02:32
정부가 수가 인상이라는 의료계 숙원을 꺼내들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8일 의료서비스의 ‘적정가격’ 문제를 공개 언급하면서 의료 민영화 논란 속에 잠복한 ‘저수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가 인상은 오는 11∼12일 대한의사협회의 파업출정식을 앞두고 정부가 띄운 협상 신호로 해석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지난해 말 철도노조 파업 같은 파국을 막고 싶은 다급함이, 의사들에게는 눈앞의 이권이 걸려 있어 타협 가능성은 열려 있다. 수가란 수술 처치 같은 의료서비스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매기는 가격을 말한다. ‘환자 1명 진찰비 1만3580원’하는 식으로 가격표가 매겨진다. 이 대가가 “원가보다 낮아 손해”라는 건 의료계가 오랫동안 해온 불평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해 작성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내부 보고서를 보면 원가보전율은 82(상급병원)∼95(의원)%로 평균 90% 정도에 불과하다. 구조적 적자가 10%쯤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의사를 지정할 때 내는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미용시술 같은 비급여(건강보험 미적용) 의료서비스와 장례식장·주차장·임대사업 수익을 더하면 원가보전율은 102∼110%(평균 106%)로 높아진다. 총액은 분명 흑자인데 ‘불건강한’ 흑자라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정부 묵인 하에 의료기관들은 보험진료로 생긴 적자를 비급여로 메워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의료기관의 비급여 부문을 조만간 없애거나 축소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당연히 알짜 수입원을 뺏길 위기에 처한 병원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동네의원엔 원격진료 허용이 치명타다. IT 기기를 통한 원격진료의 물꼬가 트이면 가뜩이나 심한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극단화되고 영세 의료기관은 줄줄이 문 닫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크다.
현재 대형병원과 동네의원을 모두 달랠 수 있는 공통의 카드는 수가밖에 없다. 하지만 수가 인상은 지난해 발표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명분에서 배치되는 딜레마가 있다. 병원의 영리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대책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의료법인의 경영난’을 이유로 내걸었다. 부대사업을 더욱 확대해 여기서 나온 수익으로 적자를 메우라는 권유다. “의료 본업에 충실하도록 하겠다”는 수가 인상의 목표와는 정반대를 지향한 정책이다.
시민단체들은 수가 문제가 제기된 ‘타이밍’을 놓고 의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비급여 같은 의료기관의 ‘딴 주머니’를 통제하지 않은 채 수가를 올리면 병·의원의 배만 불릴 것이라는 걱정도 한다.
박용덕 건강세상네트워크 상임정책위원은 “그동안 못 들은 체하던 복지부가 왜 지금 이 순간, 이 얘기를 꺼내는지도 의심스럽다. 영리 자회사 반대라는 의료계의 목소리를 수가 문제로 무마하려 해선 안 된다”며 “수가 인상 역시 비급여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구체적 대책과 반드시 함께 얘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