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도 자식도 6가지가 없었던 총리” 저우언라이 38주기… 中, 집중 조명

입력 2014-01-10 01:31

‘인민 총리’로 불릴 만큼 중국인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긴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가 또다시 중국 관영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8일은 그가 1976년 타계한 뒤 3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이에 맞춰 “저우언라이에게는 6가지가 없었다”고 그의 검소함을 추모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부패 척결과 근검절약 분위기 조성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상황과 맞물려 눈길을 끌었다.

저우 전 총리는 무엇보다도 죽은 뒤 묘지를 만들지 않은 중국의 첫 지도자였다. 그의 화장한 유골은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베이징 근교 미윈(密云), 산둥성 빈저우(浜州) 등 4곳에 뿌려졌다.

그에게는 또 자식이 없었다. 그의 부인 덩잉차오(鄧穎超)는 혁명전쟁 와중에 임신을 했으나 유산을 한 뒤 건강을 버려 다시는 임신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로 당 고위 간부였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보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국 역사에서 고위 관리가 된다는 것은 곧 권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는 총리직에 있으면서도 장쑤성 화이안을 단 한 차례도 찾지 않았다. 떠들썩하게 금의환향하는 모습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넷째로는 당파를 초월해 사람을 대했다는 것이다.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캉성(康生)이 암으로 입원하자 그를 찾아가 위문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다섯째로 힘들게 일하면서도 원망하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죽을 때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38주년 추모행사는 별도로 열리지 않았다. 다만 그의 모교인 톈진 난카이(南開)대에서 교직원과 학생들이 그의 동상에 헌화하고 조촐한 추모식을 개최했을 뿐이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