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원가 거품 쳐낼 것” 벼르지만… 전기·가스 쉽잖을 듯
입력 2014-01-10 01:37
공공요금 원가분석 나선 정부
정부가 9일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의 원가에 거품이 없는지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정상화를 위한 해당 공기업의 부채 절감 노력이 공공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일단 브레이크를 건 셈이다. 그러나 독점 공기업의 영업비밀인 복잡한 원가구조를 정부가 단 몇 개월 내에 속속들이 파헤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번 원가 검증을 계기로 수십 년간 물가 안정 명목으로 원가에 못 미치는 공공요금을 강요한 정부와,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민영화 없이 독점권을 유지한 공기업 간의 ‘침묵의 카르텔’이 깨질지도 주목된다.
◇판 커지는 공공요금 개선방안=정부는 이날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공공요금 원가 검증 방안을 확정했다. 주요 공공요금의 원가절감 가능성을 검토하는 외부 검증체계를 도입키로 한 것이다. 원가는 정해져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원가에도 거품이 있을 수 있다는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사실 지난해 초 시작된 정부의 공공요금 개선방안 추진은 2005년 이후 손보지 못했던 공공요금 산정기준을 개정(지난해 5월 완료)하고 이를 개별 공공요금에 적용하는 데서 끝마치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다. 그러나 철도노조 파업 등으로 지난해 말까지 끝내려던 전기·가스·수도 등 각 부처의 개별 요금 산정기준 마련이 미뤄졌다. 여기에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연초 “공공요금 원가에 거품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발언하면서 공공요금 개선방안은 원가 검증으로 ‘퀀텀 점프(Quantum-Jump·대도약)’했다.
수도요금을 정하는 데 4대강 사업 등 수도서비스와 상관없는 별도의 사업비용이 끼어 들어갈 수 없게 원가 기준을 명확히 정하고 손을 털려던 정부가 수자원공사가 밝힌 수도요금 원가에 불필요한 인건비, 사업비 등이 들어가 있지 않는지 살펴보고 문제를 찾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곪을 대로 곪아 온 공공요금 원가 산정방식=그동안 공공요금은 정부의 물가정책 집행에 가장 만만한 지렛대였다. 물가가 오른다는 비판이 있으면 명확한 인상요인이 있더라도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했다. 공공요금을 정하는 주체인 정부에게 정확하게 원가를 분석하고 이를 요금에 반영하는 원칙은 없었다. 시행과 중단을 반복해 온 가스요금의 원료비 연동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1998년 외환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료비 변동분을 가스 요금에 자동으로 반영하는 연동제를 실시했다. 원가에서 원료가격이 90%를 차지하는 가스요금 구조상 원화가치가 급락하면서 100원에 수입했던 가스를 150원에 들여오게 됨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98년과 비슷한 상황인 2008년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때 정부는 오히려 원료비 연동제를 중단했다. 물가안정을 우선 국정과제로 삼은 이명박정부 시절 공공요금 인상 억제에 따른 조치였다.
기재부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때 가스 연동제를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연동제가 폐지됐다”며 “지난해 초 복원이 되면서 그동안 왜곡된 가스요금이 인상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요금은 예산처럼 ‘가지치기’가 가능한 영역이기도 했다. 매년 연말 해당 공기업이 내년도 인상계획안을 갖고 오면 정부 관계자는 원가 분석에 따른 정확한 가격 산정이 아니라 적자가 안 날 정도로 적당한 선에서 가격인상 폭을 정해주는 식이었다. 정부는 손쉬운 물가 조정 수단으로 이를 이용했고, 공기업은 경쟁 없는 독점기업으로서의 단물을 향유했다.
정부 관계자는 “예전엔 정부의 공공요금 산정이 검증이라기보다는 협상의 수순이었다”면서 “원가가 너무 투명하게 공개되면 정부가 요금을 올렸다 내렸다 할 재량이 줄어든다는 우려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고난도 검증 과정 예고=그랬던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기존 각 부처별 위원회에서 이뤄지던 내부 원가 검증 구조에 외부기관 검증이라는 이중의 시스템을 마련했다.
물가정책 수단이라는 정무적 판단을 배제한 채 전문가의 손을 빌려 원가를 샅샅이 파헤쳐보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도 비교적 단순한 수도, 철도, 고속도로 통행료 원가와 달리 전기와 가스 요금 원가 분석은 간단치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전기는 원료가 원자력, 화력, 천연가스 등 구성이 다양하고 원료 비중도 시시각각 바뀐다”면서 “발전 자회사 간의 내부거래도 끼어 있어 전기 원가 내역에서 몇 개월 만에 ‘이것이 부풀려졌다’고 발표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철도요금은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정부가 들여다볼 5가지 중앙공공요금 중 원가보상률이 가장 높아 정부 내에서는 인건비 등에서 원가를 좀 더 깎을 요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오는 6월에 나오는 공공요금 산정보고서를 토대로 원가를 검증하겠다는 계획을 세움에 따라 당장 이달 말 제출될 해당 공기업들의 부채 개선 자구안에는 요금 인상안이 담기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공공요금 인상은 당분간 자제되겠지만 한편으로 공공기관 정상화 속도는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