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봅시다] ‘압구정 길고양이’ 쫓겠다고 연막 소독한다는데… 주민들의 권리인가 학대인가
입력 2014-01-09 20:07 수정 2014-01-10 01:35
주민-보호단체 1년 넘게 갈등
지하실에 찾아든 길고양이 문제로 주민 갈등을 겪고 있는 서울 압구정로 현대아파트가 10일 대규모 지하실 연막소독을 하기로 했다. 추위와 눈·비를 피해 지하실로 모여드는 고양이들이 시끄럽게 운다고 쫓아내려는 것이다. 동물애호단체는 “그러다 고양이들이 몰살당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9일 오전 현대아파트 74동 앞. 화단의 나무 뒤에서 한쪽 귀 끝이 5㎜ 정도 잘린 고동색 줄무늬 고양이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끝이 살짝 잘린 귀는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는 표식이다. 닭가슴살 말랭이를 꺼내 보이니 경계하는 듯 한 차례 몸을 뒤로 뺐다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어린 잡목 뒤에서 다른 회색 고양이가 나타났다. 옆에는 누군가 늘 챙겨주는 듯한 밥그릇이 뒹굴었다.
이곳 고양이들은 한 차례 죽을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은 놈들이다. 2012년 말 일부 주민이 고양이들이 드나드는 지하실 출입문을 잠가 수십 마리가 겨우내 갇혀 있다 굶어 죽었다. 그런데 1년여 만에 다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됐다.
지난 6일 입주자 대표 등 일부 주민들이 회의를 열어 연막소독으로 고양이를 내쫓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74동에는 ‘길고양이를 내보내고 지하실 문을 닫기 위해 10일 오후 3시 지하실 연막소독을 실시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살충제를 등유나 경유로 희석한 뒤 고온에서 연소시켜 분사하는 연막소독은 인체 유해성 논란 때문에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질병관리본부는 2006년부터 연막소독 방식을 쓰지 말도록 권고해 왔다. 이 때문에 강남구청은 이 아파트 관계자들에게 “연막소독에 대한 전문가 자문을 구하거나 객관적 자료를 검토해서 재고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동대표 이모씨는 “전문가 자문을 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민 갈등도 확산되고 있다. 소독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고양이들이 너무 많이 번식해 피해가 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주민은 “이미 이곳의 캣맘(길고양이 먹이 주는 사람)들이 자비를 들여 정기적으로 중성화를 시행하고 있다”며 “개체수가 느는 것은 사람들이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계속 버리기 때문”이라고 맞섰다.
동물단체는 지하실을 잠근 채 2시간여 동안 소독하면 고양이들이 모두 질식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아파트 측이 소독약은 인간과 고양이에게 무해하다고 주장하는 만큼 우리도 지하실에서 같이 소독약을 맡겠다”며 마스크 없이 지하실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