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 우리도 뛴다] (3) 남녀 루지
입력 2014-01-10 01:36
또 하나의 기적 꿈꾸는 ‘아스팔트 기적’
한국 루지 국가대표팀이 소치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전 종목에 선수를 내보내는 쾌거를 이뤘다.
대한루지경기연맹은 9일 국제루지경기연맹(FIL)으로부터 루지 대표팀이 소치동계올림픽 전 종목에 출전하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소치올림픽에서 한국 루지는 남녀 싱글과 남자 2인승, 팀 계주 등 네 종목에 모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대한루지경기연맹에 등록된 선수는 30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현재 대표팀 선수들 외에는 활동하는 이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한 대표팀 선수들도 2010 밴쿠버올림픽 이후에 처음 루지를 접했다. 여자 싱글의 최은주(23·대구한의대)와 남자 2인승의 박진용(21·전북루지연맹)이 2010년 호기심에 선발전에 출전했다가 대표가 됐고, 여자 싱글의 성은령(22·용인대)과 남자 싱글의 김동현(23·용인대)은 이듬해 합류했다. 그리고 남자 2인승의 조정명(21·대한루지경기연맹)은 올 시즌 직전에야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대표팀은 국내에 트랙이 없기 때문에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타며 경기 감각을 익혀야 했다. 아스팔트 위에서 타는 썰매와 실제 빙판 위를 달리는 썰매는 느낌부터 다르다. 더구나 루지는 지난 밴쿠버올림픽 당시 조지아 선수가 연습 도중 사망하기도 하는 등 위험성이 아주 높고 미세한 조작 기술이 요구되는 종목이다. 그래서 10년 전에 선배가 사용하던 헬멧을 쓰고 외국 유스 스쿨에서 사용하던 썰매를 빌려 가며 처음 나선 실전에서는 연거푸 전복 사고를 경험하며 부상을 달고 살았다. 하도 사고를 많이 내자 FIL에서 대회 참가를 반려하던 게 불과 2∼3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대표 선수들은 트랙을 미끄러질 기회가 올 때마다 외국 선수들의 2배 가까운 훈련량을 소화하는 근성으로 조금씩 실력을 키웠다. 2011년 말 김동현과 성은령이 아시안컵에서 각각 남녀 싱글 주니어 금메달을 따내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어 지난해 2월 세계선수권대회 팀 계주에서 10위에 오르고 12월에는 월드컵에서 팀 계주 8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지난해 아시안컵에서는 최은주가 여자 싱글에서 사상 처음으로 시니어 정상을 밟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여름 한국 대표팀과 손을 잡은 독일 국가대표 출신인 슈테펜 자르토르 코치는 선수들의 기량을 눈에 띄게 향상시켰다. 그 전까지 기초적인 장비 관리법조차 모르던 선수들은 자르토르 코치의 지도 덕에 국제무대에서도 가파른 상승세로 주목받는 신예가 됐다. FIL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전 종목에서 선수들을 내보내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해 아시아권에서도 팀 계주 출전국이 나올 수 있도록 여자 싱글과 남자 2인승의 와일드카드를 한국에 주기로 결정했다.
물론 대표팀은 여전히 세계 정상권은 아니지만 썰매를 시작한 지 고작 3∼4년 만에 올림픽 출전까지 이뤄낸 자신감으로 소치에서 ‘기적의 레이스’를 펼치겠다는 각오다. 현재 독일 알텐베르크에서 전지훈련 중인 대표팀은 소치올림픽 전까지 유럽에서 각종 대회를 치르며 기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