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치매의 공포
입력 2014-01-10 01:38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할 당시 70세였다.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령 당선자다. 나이가 많은 데다 B급 영화배우였던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데에는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가 나아졌습니까”라는 짤막한 질문이 한몫했다. 그는 지미 카터 대통령과의 TV토론에서 이 질문 하나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레이거노믹스를 성공시켰고, 보수주의의 정체성을 확립해 지금도 많은 미국인들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1994년부터 2004년 93세로 숨질 때까지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면서 전 세계에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했다. 그의 생모와 형도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했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이상 단백질이 쌓이면서 뇌기능 저하로 발생하는 퇴행성 치매다. 기억력 감퇴, 언어능력과 시공간 파악 능력 저하 등으로 삶의 존엄성마저 파괴한다. 알츠하이머병과는 다르게 뇌혈관 질환으로 생기는 혈관성 치매도 있는데 증상은 유사하다.
#요즘 치매가 우리 사회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치매에 걸린 80대 부모를 수발하던 50대 남성이 부모를 목 졸라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과 주식 투자 실패로 억대의 빚을 진 50대 남성이 치매를 앓던 90대 노모를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 잇따른 것이 계기다.
치매환자가 생기면 가족 중 한 사람은 환자 옆을 지켜야 한다. 치매 증세를 완화시키는 데에는 가족의 관심과 애정이 필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과정에서 환자 본인도 힘들겠지만,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경제적 고통도 엄청나다. 우리나라 노인들 상당수가 가장 무서운 병으로 치매를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치매는 고령화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다. 우리나라 치매환자는 지난해 58만명이었고, 2025년엔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가족에게만 맡길 단계는 지났고 국가와 사회 전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치매 예방은 물론 치매환자를 위한 사회적 지원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환자를 수발하는 가족들의 심리적 고통을 덜어주는 체계도 시급하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아들 론 레이건은 2008년 방한해 “국가와 사회가 정말 치매환자를 위한 최선의 의료제도를 제공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몇 년 전 발언이지만, 복지확대를 추진 중인 박근혜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