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당신은 디지털 이민자입니까, 원주민입니까

입력 2014-01-10 01:33


뉴 노멀/피터 힌센/흐름출판

왼쪽 사진에서 아기가 들여다보고 있는 건 무엇일까요. “디지털카메라요”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디지털 이민자(digital immigrants)’입니다. 필름 카메라를 쓰다가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을 목격한, 다시 말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이라는 말이 등장하던 시기를 거쳐 온 사람이란 뜻입니다. 혹시 “카메라”라고 답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시대에서 살아온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일 것입니다. 당신이 처음 사용한 카메라도 디지털카메라였을 것이며, 필름 카메라를 오히려 신기하게 접했을 겁니다. 책의 저자는 디지털이 ‘새로운 일반화’가 되는 시대를 ‘뉴 노멀(new normal)’로 정의합니다. 디지털 원주민들이 다수가 되는 시대이기도 하지요. 뉴 노멀 시대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저자는 벨기에 출신의 정보통신(IT) 분야 미래학자 피터 힌센이다. 그는 우리가 디지털 혁명의 중간 지점에 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사고를 저스틴 R. 래트너 인텔 부사장의 말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바로 이 말이다. “우리가 지나 온 디지털 혁명의 시간이 매우 대단하다고 여긴다면 앞으로 맞이할 40년은 그보다 더 압도적이어서 지난 40년을 매우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릴 것입니다.”

그는 디지털 시대의 두 번째 장이라 할 수 있는 뉴 노멀 시대의 특징과 원칙을 분석하고 기업들 역시 이에 맞춰 새로운 경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뉴 노멀 시대의 첫째 원칙은 ‘디지털 고장에 대한 허용치는 0’이라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디지털 세계의 역량과 완벽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에서 제공하는 것들은 100% 신뢰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9년 2월 G메일 서비스가 4시간 중단되자 수천만 명의 사용자가 그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수 시간의 먹통이 가져다주는 혼란은 이제 가공할 수준이 됐다. 뉴 노멀 시대에 다가갈수록 우리는 점점 디지털에 의존하면서 디지털 고장을 더욱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둘째, 속도가 완벽성에 앞서게 된다. 첫 원칙이 보여줬듯 완벽성을 추구하게 되면서 완벽성은 의미가 없어지고 신속성과 편리성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셋째, 뉴 노멀 시대엔 뭔가를 숨길 수도 없을뿐더러 모든 것이 측정 가능하다. 기업 입장에선 제품의 기능과 서비스가 실시간으로 고객들에게 알려지는 만큼 이에 따른 책임 역시 완벽하게 져야 하는 ‘완전 책임’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 기업, 학교 등을 지배했던 위에서 아래로의 통제가 가능하다는 개념은 이제 폐기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원칙을 토대로 기업이 취할 수 있는 고객, 정보, 경영, 혁신, 기술 전략을 소개한다. 가령 정보와 관련해 과거에는 정보 수집과 보관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가공되지 않은 정보를 체계적인 지식으로 바꾸는 작업이 중요해졌다. 과거에는 백업을 통해 정보를 잃어버리지 않는 데 주력했지만 오히려 이제는 휴지통을 자주 활용해 필터링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 노멀 시대의 조직 역시 지금과는 달라진다. 완전 책임의 의무가 높아지면서 회사 직원들도 단순 노동 공급자에 머물지 않는다. 이에 따라 핵심 직원들은 고용 계약 체결 시 폭넓은 선택권을 갖게 된다. 반면 경영의 핵심 기능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는 갈수록 아웃소싱된다. 이런 변화는 젊은 세대의 직장관을 바꾸고, 결국 이들을 잘 다루는 문제가 중요해진다. 과거 깊이 있는 전문성을 갖춘 ‘I’형 인재와 달리 앞으로는 전문성은 물론 갖고 있는 지식을 상황 전체에 적용하는 능력까지 갖춘 ‘T’형 인간이 새로운 인재상으로 대두할 것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구성원들이 늘면서 기업의 IT 부서들은 존재 근거를 잃어갈 것이다. 과거에는 IT부서에서 기업의 시스템을 개발한 뒤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활용법을 가르쳤다면, 뉴 노멀 시대에는 직원들이 집에서 저마다 새로운 정보 활용 도구에 익숙해진 뒤 거꾸로 이 지식을 직장으로 가져와 IT 부서를 교육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뉴 노멀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저자는 ‘디지털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라’는 답을 내놓는다.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자 애쓰는 고위 간부들과 회의를 하며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분들이 차라리 신입 사원이나 젊은 고객 같은 차세대 디지털 원주민들이 어떤 라이프 스타일로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9년 유럽에서 처음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 봐도 시차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기업에 필요한 전략 제공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다가올 시대에 대한 명쾌한 분석과 알기 쉬운 설명은 한 번쯤 귀 기울여볼만하다. 이영진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