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임만호 (13) ‘아가페서적’ 3년… 주님은 생명 살리는 서점으로

입력 2014-01-10 02:31


1976년 2월 가게에 ‘아가페서적’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유리문에 성경, 찬송이라 큼지막하게 써 붙이고 개업예배를 드렸다. 10평 남짓이었지만 나에게는 백화점처럼 커 보였다.

문서선교를 위해 서가 한편에 무료 대여 코너를 만들었다. 미우라 아야코의 ‘빛이 있는 동안에’ ‘살며 생각하며’ ‘이 질그릇에도’ 등 기독서적을 진열하고 서점에 들르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대여해 줬다. 호응이 좋았지만 30%는 회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사명이라 여기고 계속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20대 아가씨가 서점에 들어왔다. “뜨개질 책이 있나요?” “여기는 기독교 서점이라 그런 책은 없습니다. 다만 무료로 빌려주는 건 있습니다.” 안이숙 선생님의 ‘죽으면 죽으리라’를 권했다. 3일 후 밝은 얼굴로 서점을 찾은 그에게 후편인 ‘죽으면 살리라’를 빌려줬다.

3일 후 그가 다시 찾아왔다. “책을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금식기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예?” 의외의 질문이었다. “갑작스럽게 금식기도를 하기보다 가까운 교회에 나가서 목사님의 신앙지도를 받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는 2시간 후 다시 서점에 왔다. “성경 공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결국 내가 아는 성경 공부 모임에 연결해 줬다.

그의 사정은 이랬다. 국립병원 간호사로 근무했는데 영등포 모 교회 목사님의 아들과 연애하며 결혼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목사님 댁에서 비신자와 결혼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 그 총각은 다른 여성과 결혼을 해버렸고 그 충격으로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에 드러누웠다는 것이다. ‘누워 있지만 말고 뜨개질이라도 배우라’는 어머니의 성화에 뜨개질 책을 찾으러 서점을 찾았고 내가 권한 책을 읽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것이다.

시간이 한참 흘러 남서울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밖에서 인사를 하는데 어떤 여자 분이 아기를 안고 내 앞으로 왔다. “선생님, 혹시 몇 년 전에 남영동에서 서점하시던 분 맞지요?” “그렇습니다만.” “그때 책을 빌려 읽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 후 결혼도 하고 남편의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미국에 따라 갔습니다. 귀국하기 전 목사님께 ‘한국에 돌아가면 어떤 교회에 출석하는 게 좋겠냐’고 여쭤 봤더니 반포 남서울교회를 추천해 주시더군요. 그때는 정말 감사했어요.”

서점을 3년간 운영하면서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밤 20대 중반의 아가씨가 서점에 들어왔다. 우산도 쓰지 않고 비 맞은 머리를 손으로 훔치면서 서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 책을 찾으시나요?” 대답도 없이 나가려는 아가씨에게 ‘죽으면 죽으리라’를 권했다. 그녀는 책을 받아들고 나가버렸다.

몇 달 지나 서점으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저는 제천에서 연애를 하다가 실패한 뒤 부끄러운 마음에 용산 해방촌 친척집에 머물던 사람입니다. 실연 때문에 화가 치밀어 투신자살을 하려고 한강으로 향하다가 경찰의 검문을 받았습니다. 경찰이 용산역에서 제천행 차표를 사주며 고향으로 갈 것을 권했지만 다음에 가겠다고 하고 해방촌으로 향하다가 선생님 서점이 들어간 겁니다. 아저씨가 추천해 주신 책을 읽어보니 ‘정말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제천으로 돌아와 교회에 출석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처럼 생명을 살리는 문서선교의 보람은 갈수록 커졌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