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화백 탄생 100주년-장남 박성남씨가 말하는 ‘나의 아버지’
입력 2014-01-09 02:13
“아버지가 추구한 주제는 선함·진실함
밀레 같은 화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
“아버지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분이었어요. 힘든 시절 삶의 풍경을 그린 아버지는 어디에 내놔도 가장 한국적인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국민화가 박수근 화백은 1914년 2월 21일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위로 딸만 셋이 있는 삼대독자여서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뜻으로 부모가 그의 이름을 ‘목숨 수(壽) 뿌리 근(根)’으로 지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기념전(17일∼3월 16일)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부전자전으로 화업(畵業)을 잇고 있는 장남 박성남(67)씨를 7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나 아버지 얘기를 들어봤다. 고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읜 성남씨는 1986년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가 2005년 박수근·이중섭 위작 파문이 불거졌을 당시 귀국해 경기도 파주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는 “그림 그리는 아버지 모습을 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탄생 100주년이라니 감회가 새롭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힘들게 공부하셨다고 해요. 양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밀레의 ‘만종’을 원색 도판으로 처음 보고 감동을 받아 ‘하나님, 저도 이 다음에 커서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게 해 주옵소서’라며 늘 기도했다고 말씀하셨어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박수근은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그의 작품 소재는 아이를 업고 있는 소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여인 등 서민적인 풍경이었다. 성남씨는 “아버지가 평생 추구한 주제는 선함과 진실함이었다”며 “예술가는 시대를 앞서간다고들 말하지만 아버지는 동시대를 진실하게 기록하는 작가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아버지가 평소 트레이드마크처럼 반복한 말은 “괜찮아”였다고 전했다. “그림을 팔아야 쌀을 살 정도로 형편이 나빴지만 항상 ‘괜찮아, 괜찮아’라고 했어요. 하루는 ‘난 참 행복해’라고 하시기에 ‘왜요?’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추운 날 밖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따뜻한 곳에서 그림을 그리니 얼마나 행복하냐’는 거예요.”
박수근은 26세가 되던 1940년에 18세의 김복순과 동네 교회에서 결혼해 1녀3남을 두었다. 인천여상 교장을 지내고 퇴임한 큰딸 인숙씨와 성남씨가 대를 이어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6·25전쟁 때 월남해 서울 창신동에 자리 잡은 박수근은 1965년 51세의 나이로 숨지기까지 국내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인 45억2000만원에 낙찰된 ‘빨래터’ 등 300여점을 남겼다.
“부모님의 첫 데이트 장소는 빨래터였대요. 추억의 장소를 담은 작품인데 한때 진위 논란이 불거져 가슴이 아팠어요.” 소품 한 점에 몇 억원인 아버지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지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한 점도 없어요. 제가 가지고 있다가 6·25전쟁 같은 일을 만나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그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다시 이렇게 다 모여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요.”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