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신분 도용 (하)-타인의 삶을 훔친 ‘화차’] 한양대 의대, PDS 강의하는 이유

입력 2014-01-09 02:33

“의사 온라인 글·사진 환자에 상처 될 수도”

‘컴퓨터 엔터키를 누르는 순간 내 말 한마디가 전 세계로 퍼진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지난해 2학기부터 한양대 의대생들은 이런 경고로 시작하는 수업을 듣고 있다. 환자·의사·사회의 관계를 고찰하는 PDS(Patient, Doctor and Society) 강의는 의사로서 갖춰야 할 인문사회적 소양을 키우고 환자 및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시작됐다. 그중 ‘의사와 환자의 경계선 침범’이란 제목의 수업은 의사가 환자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기준을 제시한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의사가 온라인에 올린 일상적인 글과 사진도 환자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 ‘환자는 진료나 수술을 받기 전 인터넷에서 해당 의사를 검색하므로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선 블로그에 글을 남길 때도 신중해야 한다’ ‘의학 블로거의 99%가 의도치 않게 다른 블로거에게 노출돼 있다’ ‘의대생·전공의 중 37.5%만이 비밀계정을 사용하고 있다’….

경계선 교육을 진행하는 박용천 교수는 “의대생 시절 SNS, 이메일, 블로그 등에 신상을 노출했다가 나중에 의사가 됐을 때 환자가 이를 뒤져보고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최근에 무척 많다”며 “정신의학적으로 불안한 환자가 온라인에서 진료의사와 관련된 정보를 접하고 더 큰 충격을 받는 걸 최소화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 수업에서 사이버 공간에 글이나 사진을 올릴 때 어떤 기준을 세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우고, 토론한다.

박 교수는 “이런 수업이 등장한 건 사이버 시대의 문제점을 의료계에서도 자각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이 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비교적 선망의 대상인 의사의 삶을 무분별하게 노출할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