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교장관 회담]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다자회의’ 구상 배경·전망
입력 2014-01-09 02:34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정부 고위 당국자가 7일 오후(현지시간) 밝힌 북한 정세 변화에 대비한 다자 회의 구상의 핵심은 한·미뿐 아니라 중국 등이 포함된 다자 간 회의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런 구상은 상황에 따라선 북핵 6자회담 틀과는 별도로 북한 체제 변화를 유도할 다자 협의체로 발전할 수 있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기본적 시각이 한·미 양국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런 구상이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한·미 간 대북협의 심화=한·미 양국이 북한의 급격한 상황 변화에 대비한 양자 협의를 강화하기로 한 것은 장성택 처형 이후 한층 불안정해진 한반도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차원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다양한 이슈로 만나는 협의는 많지만 북한 정세에 초점을 맞춘 집중적인 협의는 별로 없었다”며 “북한 정세 전개에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심도 있게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미 양국의 외교·국방 당국 간에는 대북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 대한 협의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북한 체제 붕괴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9’ 등 연합 대응계획이 마련된 상태다. 결국 한반도 안보와 관련해 양국이 선제적·능동적으로 대응할 고위급 협의를 고정 대화 채널로 체계화하겠다는 의미다.
◇북한 변화 유도 및 국제 공조 4가지로 다면화=북한 정세 변화에 중점을 둔 양자 또는 소(小)다자 간 대화 채널은 국제사회의 대북 문제 협력 측면에서 또 다른 함의를 지닌다. 북한 정세를 논의하는데 머물지 않고, 이를 통해 북한 변화를 유도하자는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북한의 변화를 좀 더 빨리 이끌어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한·미를 주요 축으로 한 대북 국제 공조는 군사안보 측면의 ‘확장억지’, 외교 차원의 ‘비핵화 협상’, 유엔 차원의 ‘경제제재’ 등 3가지 방향에서 이뤄져 왔다. 그러나 한·미 간 새로운 협의 채널이 북한의 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데 중점을 두면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는 4가지로 한층 다면화하게 된다. 북한 변화 유도 방법은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을 통한 북한 주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방법 등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자 협의에 중국 참여는 난망=그러나 북한 급변사태 대응 협의에 중국이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소다자 회의 틀을 갖추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중국의 대외정책 기조는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지만 이는 한·미 양국의 한반도 안정 목표와는 상이하다.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북한이 남한에 흡수 통일되는 사태를 가장 우려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자신들의 개입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한 안보 전문가는 “중국은 북한이 핵을 만드는 것은 싫지만 북한이 붕괴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대북 협의의 경우 한·중 또는 미·중 간 채널을 통해 양자 간에 수면 아래에서 논의할 수는 있지만 한·미 양국이 추진하는 틀에 맞춰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외교 소식통도 “북한과의 관계를 감안할 때 중국이 공개적으로 한·미와 북한 정세 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공동 논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꾸준히 추진하는 한·미·중 3각 전략대화를 중국이 내켜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북핵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6자회담 틀과는 별도의 협의체 구성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또 북한 정세 변화 논의를 유엔과 공식적으로 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유엔 차원의 개입은 이미 급변사태가 벌어진 뒤 평화유지활동 차원에서 이뤄질 문제로, 사전에 북한 변화 유도 차원에서 유엔이 나서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한편 외교부는 8일 밤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고위 당국자의 이런 언급에 대해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협의채널은 아니다”라며 “북한 정세 동향에 초점을 맞춰 심도 있게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우리 정부가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제안한 뒤 대외적으로는 북한 체제 붕괴를 의미하는 ‘급변사태’에 대비해 협의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데 부담감을 느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