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발치는 치매상담콜센터 사연 들어보니… 가족 “요양병원에 모셨어요” 상담원 “불효자 자책 마세요”
입력 2014-01-09 02:34 수정 2014-01-09 09:34
아버지(94)를 모시고 사는 A씨는 동네에서 착한 딸로 소문이 자자하다.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치매에 걸린 부모를 정성껏 돌봐 성당에서 효행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A씨는 이웃의 칭찬이 족쇄로만 느껴진다. 아버지는 밤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돌아다닌다.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많다. 요즘에는 아버지가 치매 약을 먹지 않겠다고 버텨 애를 먹고 있다. 아버지는 약을 내밀면 역정을 냈다.
A씨는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건지 암담하다.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매일이 고통의 연속인데 아무도 내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무거운 마음을 털어놨다.
대구에 사는 B씨는 2년 전 치매 진단을 받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증상이 본격화되면서 시어머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얼마 전에는 “훔쳐간 돈 3만원을 내놓으라”며 안방에 칼을 들고 들어왔다. 그때 받은 충격으로 B씨는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B씨에게 집은 더 이상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B씨는 숨 쉴 공간이 절실했다.
보건복지부의 치매상담 콜센터(1899-9988)에는 A씨와 B씨 같은 치매 환자 가족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1일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벌써 상담 건수가 1700건을 넘었다. 초기 치매 증세와 치매 어머니의 이상행동에 대한 대처 방법 등을 묻는 전화도 많지만 고달픈 마음을 털어놓는 상담 신청도 쏟아졌다. 새벽에 전화를 걸어 간병으로 지쳐 곪을 대로 곪은 마음을 털어놓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도움과 상담이 절실한 치매 환자 가족이 많다는 얘기다.
치매상담 콜센터 관계자는 8일 “상담을 하다 보면 1시간은 훌쩍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만큼 가족들이 터놓고 얘기하고 숨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치매 증세가 심해진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셨다는 한 중년 남성은 “힘든 결정 하셨다”는 상담원의 말에 “다들 나를 불효자로 보는 것 같아 힘들었다. 이해해줘서 고맙다”며 울먹였다.
전문가들은 치매를 환자 본인보다 가족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기는 질병이라고 말한다. 퇴행성 질환인 치매는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악화된다. 완치의 희망이 없다는 점뿐 아니라 최소 10년 이상의 간병이 필요한 ‘긴 병’이라는 것과 요양시설에 부모를 맡길 때 감당해야 할 사회적 비난도 치매 환자 가족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치매 환자 가족을 ‘숨겨진 환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가족들은 아예 성격이 바뀐 듯 이상한 행동을 하는 부모나 배우자의 모습을 보며 극도의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과거에 보여줬던 강하고 듬직한 모습 대신 망상, 의심 같은 이상행동을 하는 가족의 모습을 목격할 때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질병으로 인한 증상임을 알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는 큰 벽이 있다.
김기웅 중앙치매센터장은 “기억력 감퇴 같은 치매 초기 증상에는 잘 대처하던 가족들도 망상 같은 이상행동을 목격하면 낯설고 당황스러워한다”며 “이런 일을 겪는 동안 가족들이 무기력증에 빠져들고 아예 치료를 포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