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 패러다임을 바꾸자-② 저성장기의 기업 경영전략] 군살 빼면서 핵심사업에 집중하라
입력 2014-01-09 02:13
싸움의 상대가 달라지면 새로운 전술을 짜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장기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업 경영전략에도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게 됐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세계 경제는 저성장에 머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사 결과 2008∼2012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2.9%로 2003∼2007년 4.8%와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선진국 경제성장률은 0.5%에 불과했다. 내년에는 신흥국마저도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추세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데 있다. 이에 따라 산업계는 물론 개별 기업의 변신이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단기 매출 증대를 노리거나 과감한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기초체력을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길고 강력한 불황…‘체질’을 바꿔라=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4월 경영인 6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37.3%가 향후 2∼3년은 저성장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28.2%는 저성장 기조 지속 기간을 3∼5년으로 내다봤다. 5년 이상이라는 응답자도 21.4%나 됐다. 어느 때보다 긴 불황의 시대를 겪고 있는 것이다.
당장 올 1분기에 기업 체감경기는 좋아질 기미가 없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250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4년 1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에서 1분기 전망치는 92로 집계됐다. BSI가 100 미만이면 이번 분기보다 다음 분기에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많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저성장 기조가 기존 불황과 다르다고 말한다. 과거 일부 업종이나 특정 국가 등에서 나타나던 불황이 지금은 전 세계에서, 산업계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도 저성장 시대에 적응하고 버티는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경영 체질까지 바꿔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투자, 당장의 매출 확대를 바라보기보다 ‘위기관리’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와 같이 불황 뒤 급성장을 기대하고 투자를 늘렸다가 위기를 맞은 기업들이 적지 않다. STX·동양·웅진그룹 등이 대표적 예다. 이들은 그룹의 주력 분야 매출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상태에서 전체 경기마저 나빠지자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금융업도 마찬가지다. 대한상의가 올 하반기 전국 150개 금융기관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금융산업 미래와 경쟁력 강화 방안’을 조사한 결과 국내 금융산업 경쟁력을 위협하는 리스크 요인으로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따른 수익기반 약화’(37.5%)를 가장 많이 꼽았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8일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심화되면서 대부분 수익을 수수료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금융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고비용 체질을 개선하고, 새 먹거리를 찾아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위기’ 받아들이고, 잠재 시장 찾아야=국내 주요 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그 결과 신흥시장에서의 점유율이 대폭 향상됐고, 우리 기업이 글로벌 위기를 견뎌내는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미래 먹거리 쟁탈전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전문가들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경기 회복의 날’을 기다리기보다는 현재의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전자·반도체·IT 등 기존 사업 분야를 벗어나 의료기기, 스마트카 등 새로운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여기에다 내부적으로 구성원에게 어려움에 맞서는 도전정신을 체질화시키고, 한정된 자원을 보다 실현 가능한 목표에 맞게 집중해야 한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호황기에 낀 군살을 빼면서 비주력·비핵심·적자 사업은 아웃소싱이나 전략적 제휴, 매각 또는 최악의 경우 청산을 통해 축소하거나 정리하고 핵심사업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직원, 고객, 협력사와 위기 극복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고 고통 분담을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저성장 시대에 기업은 시장과 소비자를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잠재 수요를 포착해야 현재의 상황을 돌파할 뿐 아니라 미래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밀착력을 높여 기존에 없던 가치를 제공하는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는 의미다. 독일 금융기업 알리안츠는 고객의 행동·감정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숨은 수요’를 발굴하기 위해 심리학자와 문화인류학자 등이 참여한 전문팀을 꾸렸다. 김성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고객 행동에 대한 끈기 있는 관찰과 이면의 심리분석을 통해 잠재 수요를 잡아내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빅 데이터 기술을 토대로 광범위한 실시간 정보를 통합 분석해 마케팅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