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증권사들 또 ‘뒷북’… 삼성전자 목표주가 줄하향
입력 2014-01-09 02:43
직장인 김모(33)씨는 지난해 8월 말 삼성전자 주식 15주를 두 차례에 걸쳐 사들였다. 주당 가격은 135만원 정도였다. 당시 국내 증권사 대다수는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180만원 정도로 내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8일 현재 삼성전자 주가는 129만1000원으로 추락했다. 김씨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며 “삼성전자 살 때만 해도 좋은 얘기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장밋빛 보고서에 속은 투자자=국내 증권사들은 지난해 내내 삼성전자 주식을 ‘사라’고 외쳤다. 단 한 곳의 증권사도 ‘유보’나 ‘매도’ 의견을 제시한 곳이 없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삼성전자가 IT모바일을 기반으로 실적이 급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지난해 머물렀던 120만∼140만원 사이의 주가는 기업의 가치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는 평이 이어졌다.
국내 증권사의 이러한 전망은 지난해 6월 보기 좋게 빗나갔다. JP모건이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팔자세로 대폭 전환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국내 증권사는 장밋빛 전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일제히 “주가가 떨어진 지금이 매수 기회”라는 군침 도는 문구를 대거 흘렸다. 목표주가는 180만∼200만원 정도로 유지했다. 결국 여기에 속은 투자자들은 연초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려야 했다.
◇부랴부랴 조정 나선 증권사=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실적을 두고 또다시 전망에 실패한 증권사들은 8일 일제히 새로운 보고서를 쏟아냈다.
이 중 절반의 증권사는 목표주가를 소폭 하향 조정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기존 20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10% 내렸다. 한화투자증권은 190만원에서 175만원으로, 신한금융투자는 175만원에서 165만원으로 내렸다. IBK투자증권, 신영증권, 아이엠투자증권, HMC투자증권 등도 목표주가를 하향했다.
서원석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전망은 8조7000억원으로 부품 사업이 계절적 수요 약세로 부진하다”며 “올해 스마트폰 범용화로 중저가폰 비중이 오르면서 이익이 낮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송종호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의 대규모 성과급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실적 개선으로 보기 어렵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여전히 매수의견만큼은 고집하고 있다. 몇몇 증권사들은 낮아진 실적에도 불구하고 목표주가를 조정하지 않았다.
목표주가를 190만원으로 유지한 KB투자증권의 이동륜 연구원은 “현재 주가는 올해 예상 실적에 비하면 아직 낮은 편”이라며 “향후 주력사업 부문인 반도체와 IT모바일사업 부문의 견조한 이익창출이 실적으로 확인되면 의미 있는 주가 반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고개 젓는 외국계에 불안한 투자자=미적지근한 국내 증권사와 달리 외국계는 확실히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이날 맥쿼리증권은 삼성전자의 지난해와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각각 6%, 16% 내렸다. 스위스의 UBS그룹은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종전 180만원에서 170만원까지 내렸다. UBS는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판매량 감소 전망 등을 생각하면 상반기에는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평했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국내 증권사를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주식 관련 인터넷 카페 등에서는 국내 증권사에 대한 비판 글이 봇물 터지듯 올라오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목표주가를 내리는 것만으로도 큰일”이라며 “정보 접근도 제한적이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