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대책 ‘언발에 물붓기’… 가계 빚 늘어 딜레마
입력 2014-01-09 02:35
“부동산 경기침체와 가계부채 급증 문제의 해법은 거대한 딜레마로 둘러싸여 있다. 목표가 뒤섞여 명쾌한 정답을 찾기 힘들다.”
박근혜정부가 집값을 민심으로 인식하고 부동산 활성화를 언급했지만 해법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가계빚을 키우라고 권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의 가계부채 위험도(148.7점)가 리먼 사태 당시인 2008년(154.4점) 수준에 근접했다고 경고했었다.
◇대출 늘려 부채 해결?=8일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하우스푸어 등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경기 회복이 꼭 필요하지만 부동산 활성화 대책은 곧 가계부채 문제를 늘리는 방향으로 이어지곤 했다”고 말했다. 부동산 활성화 노력은 새로운 저금리 대출상품의 개발 등 결국 “돈을 빌려 집을 사라”는 권고였고, 가계부채는 모순되게도 외려 증가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 가계빚은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4월 집을 살 때 내야 하는 취득세를 한시적으로 경감하는 내용의 ‘4·1 부동산 대책’이 확정되자 2분기 가계빚은 급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예금취급기간의 가계대출은 전월보다 1조4153억원 늘었다. 5월에는 3조3979억원, 6월에는 6조5463억원이 늘었다. 1월과 2월까지만 해도 각각 3615억원, 1조7974억원이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10월 가계대출 증가액이 8월보다 높은 4조55억원을 기록한 것도 ‘8·28 전월세 대책’의 영향이라는 평가가 많다. 금융권 관계자는 “‘빚 권하는 정부’라는 말이 유행하듯, 가계대출 증가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당국으로서는 부동산 활성화를 돕기 위해 좋은 대출상품의 개발을 독려하는 한편, 금융회사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규제도 잘 해야 하는 양면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분별한 대출, 부실 우려 상존=급증하는 주택담보대출은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심각한 문제를 준다. 특히 저축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주택가격 대비 최대 대출 가능액 비율)을 준수하지 않고 멋대로 초과 대출하는 관행을 좀체 버리지 못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인천 금화상호저축은행에서 629건, 총 281억3800만원의 부당 대출 사실을 적발했다. 이 저축은행에서는 LTV를 적정 수준보다 134.3% 포인트 초과해 대출해준 사례도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 회부된 이 저축은행의 대표이사는 “대출 부당취급은 저축은행의 생존을 위한 관행적 업무 처리였다”고 진술했다.
‘무주택 서민의 내집 마련’ 취지로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취급하는 장기 주택담보대출인 보금자리론도 부실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판매된 보금자리론은 2012년 판매 물량의 2배에 육박하는 11조1094억원으로 집계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5조7036억원(51.3%)은 LTV 60%를 초과한 대출로 나타났다. 박근혜정부는 보금자리론의 LTV만 9년째 70%까지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LTV 60% 이상’에 적용된 대출의 쏠림 현상이다. 가계부채 급증과 은행권 건전성을 우려하는 금융당국은 주택담보대출 부실을 막기 위해 서울과 수도권의 LTV를 50%, 지방은 60%로 규제하고 있다. 다시 말해 10조원대 판매된 보금자리론의 절반 이상이 부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주택의 평균 경락률(감정가 대비 낙찰가율)은 75% 수준이다.
◇“관리 가능한 영역”=금융당국은 다만 전세자금대출 등 가계부채의 증가세를 규모 측면으로만 파악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 정도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범위 내에서 관리되고 있다”고 표현했다. 단순히 규모가 급증한다고 해서 문제가 아니라, 자영업자와 다중채무자, 저신용·저소득층 등 ‘가계부채 고위험군’이 아니면 어느 정도 대출 증가는 선순환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부채 증가가 소비를 둔화시킬 수 있다는 위험은 당국도 눈여겨보는 부분이다. 그는 “질적 측면에서 다중채무자 등 취약계층의 부채를 모니터링하면서 어느 정도는 지원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