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전석운] 이탈 학생 방치하면 안 된다
입력 2014-01-09 02:33 수정 2014-01-09 09:16
뮤지컬 ‘캣츠’ ‘오페라의 유령’의 안무를 짠 질리언 린은 영국왕립발레학교 출신의 세계적인 무용가다. 그러나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 문제아로 찍혀 학교에서 쫓겨날 뻔 했다. 우여곡절 끝에 주말 댄스교실에 등록하고 난 뒤부터 산만한 행동이 가라앉고 집중력이 좋아졌다. 학업성적도 올랐고 마침내 자신의 꿈과 진로를 찾았다. 할리우드 최초의 흑인 영화감독 고든 파크스는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창의적이고 지적인 영화감독의 학교생활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최초의 상업우주여행사를 세운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은 열 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뒀다. 난독증이라는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걸 학교에선 눈치채지 못했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 진학 후에 부모님이 평생 저축한 돈을 쏟아부어야 할 만큼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닐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며 6개월 만에 그만 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도에 그만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학교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어떤 재능도 없다고 생각한다.
재소자보다 많은 이탈 학생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초중고생 중 학업을 그만두는 아이가 전국적으로 1만명대에 머물렀다. 이 숫자는 1990년대 후반 IMF를 겪으면서 5만명대로 껑충 뛰더니 2010년에는 7만6500여명으로 치솟았다. 저출산 기조 속에 학령인구가 줄어드는데도 학업을 그만두는 학생은 오히려 증가했다. 이중 가정과 학교로 돌아오는 아이들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아이들은 거리에서 생존의 위협과 범죄의 충동 사이에서 불안과 분노를 키우고 있다. 같은 시기에 10대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강력범죄는 폭증했다.
현재 전국의 성인교도소에 수용된 재소자는 4만3000여명이다.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아이들이 해마다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있다. 학교이탈 청소년의 증가를 방치하는 건 우리 사회를 안전하지 못한 사회로 몰아넣는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흉악범들은 대개 성장기 때 가정과 학교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학교이탈학생 숫자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교육의 획일성 탓이 크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잘하는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는 노력도 해보지 못하고, 국영수 위주의 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이탈학생들이 가정의 붕괴, 꿈과 목표를 상실한 공부, 폭력적인 또래문화 등에 시달리다 못해 학교를 등지고 있지만 학교는 아이들의 좌절을 눈여겨 보지 않는다.
위스쿨 직업학교 많아져야
학교 안팎의 위기 청소년들을 돕는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학교 부적응 아이들을 돕기 위한 기숙형 위(Wee)스쿨이 충북 진천 등 일부 지역에 설치돼있지만 서울, 인천, 부산, 광주 등 주요 도시에는 아직 하나도 없다. 학교단위의 위클래스는 현장의 수요가 많은데도 설치되지 않은 학교가 많다. 그나마 위클래스가 설치된 곳도 상담교사 등 인력이 배치되지 않아 겉돌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생존의 위협을 받는 거리의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잠자리와 먹을 것을 줘야 한다. 가정학대를 피해 돌아갈 가정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기숙형 직업학교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학교 공부를 받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도 많아져야 한다.
행복교육은 아이들의 불행을 줄이고 예방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분노조절에 실패한 아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자존감을 키워주고, 작지만 지속적인 성공경험을 쌓도록 배려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전석운 사회부장 swchun@kmib.co.kr